◆ 훈련/훈련 및 밸런스

[스크랩] [야구] 세계야구의 트렌드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 (펌글)

작 형 2011. 9. 20. 19:04


바이오메카닉(biomechanics)이란 말은 인체공학 이란 말로 해석된다.

공학(engineering)의 목표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창출하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이듯,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의 목표는

인체의 활용도를 최대화하는 동시에 부상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인

피칭이론을 만들고 보급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코치진들이 특정한 자세나 폼에 지나치게 치우친 코칭을 하곤

하는데 어떤 단계에서의 특정 신체 부위가 어떤 모양을 이루어야 한다는 식의

코칭을 신체 배열에 신경쓰는 코칭(emphasis on body alignment) 이라고 하는데

바이오메카닉 코칭 계열 중 하나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 윌포스 코치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코칭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의 코칭단계 라고 한다.



인체공학 피칭이론은 특정단계의 신체 배열에는 큰 중요도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체의 배열부분에 있어서는 개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도를 부여하는

편이다. 대신 인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극대화 시키는 동작원리를 이해하고

그 원리들간의 부드러운 연결성을 강조함으로써 어떤 특정 자세나 폼이 아닌 효율성

이 좋은 동작을 만들어 낸다.

어떤 선수의 특정 동작이나 자세가 기존의 상식에 빗대어 정석적인 폼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크게 관계가 없고

인체공학적인 기본 원리에 부합되느냐 안되느냐, 투구 효율" 을 떨어뜨리느냐

아니냐를 더 중요하게 본다.



[투구효율: 투수가 정지상태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힘이 얼마만큼 낭비없이

릴리스하는 손 끝까지 전달되느냐를 말함]




2. 후지카와의 투구폼 변화와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


1. B-피칭이론 개괄

B-피칭이론은 피칭동작(delivery)을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영역으로 구분합니다.

전진력 = 리프팅(다리를 올리는 동작) + 스트라이드를 통해 주로 만들어짐

회전력 = 축을 중심으로 한 상체의 회전운동에 의해 만들어짐 (축의 중심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음)

다이내믹 밸런스 = 투구폼 내내 이어지는 동적인 균형감각으로 일반적으로 머리의 전후좌우상하 움직임으로 파악. 머리가 심하게 기울어지는 폼이나 머리의 높이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폼은 밸런스 유지에 쉽지 않은 폼으로 간주될 수 있음.

이 세 요인의 최적의 만남이 가장 좋은 피칭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B-피칭이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피칭이론도 종국에는 같은 것을 추구하겠지만 문제는 추구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체계정합성이겠죠. (전진력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밸런스를 무너뜨린다던가 회전력을 강조해서 밸런스를 무너뜨린다던가 하는 식...)

2. 국내 피칭이론의 myth - 가능하면 힘을 축족(투수판을 밟고있는 다리)에 오래 모았다가 길고 낮게 뻗어라

국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피칭이론에서는 가능하면 힘을 축족(투수판을 밟고있는 다리)에 오래 모았다가 길고 낮게 뻗어라고 가르칩니다. 보통 투수들은 리프팅의 최고점에서 한템포 느려지면 축족 무릎을 굽혔다가 앞으로 강하게 튀어나가곤 하죠.

이것이 과연 전진력 형성에 효율적인 움직임일까요?

전진력 생성의 측면에서 볼 때, B피칭이론에서는 리프팅과 스트라이드를 부드러운 한 동작으로 간주합니다. 리프팅의 최고점에서 축족에 체중을 싣고 힘을 충전하다가 앞으로 길고 낮게 뻗으면 더 큰 전진력이 만들어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게 대단한 효과가 없다는 것이 B피칭이론의 주장입니다. 리프팅, 즉 다리를 올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체를 앞으로 전진시키는 과정의 시작인데, 이것을 죽이면서 잠시 시간을 끌고 있다가 앞으로 전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이야기하죠.

아래 린스컴의 하체이동 연속사진을 보시면 B이론에서 주장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아실 수 있을겁니다. 리프팅의 최고점에 올라간 시점에 정지동작이 있나요? 아닙니다. 린스컴의 몸은 이미 리프팅의 최고시점에 상당히 전진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 지점에서 멈출 수가 없는 정도로요. 리프팅과 스트라이드가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www.baseballthinkfactory.org)

그리고 그의 축족 무릎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리프팅 최고점을 지나쳐서도 무릎이 굽어지지 않고 초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린스컴이 인위적인 무릎 반동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전진력(리프팅동작을 시작하면서부터 생성된)을 이용하여 전진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몸을 전진시키게 되면 전진력 감소 없이 몸이 전진하게 되어 전진력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리프팅과 스트라이드가 한 동작처럼 부드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훨씬 자연스럽고요. (부가적으로 설명할만한 다른 디테일한 이야기들은 생략하겠습니다.)

반대로 국내 이론처럼 리프팅탑에서 충분히 힘을 모은 후 스프링 튀어나가듯 앞으로 전진하게 되면 전진력이라는 것은 결국 리프팅탑에서부터 축족의 인위적인 반동작용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는 셈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와(탑에서의 유지+스트라이드시 하체 의존도+축족 무릎이 떨어짐으로 인한 위치에너지 손실) 함께 다이내믹 밸런스 유지에도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3. 여기까지 읽는 데 성공하신 분들은 이제야 후지카와 큐지에 대한 BIC의 입장을 들으실 수 있겠습니다.

후지카와 큐지의 2004년 동작은 오래 있다가 길고 빠르게 내딛어라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리프팅 시작동작에서 스트라이드 들어가는 동작 중간에 분명 템포가 매우 느려지는 순간, 다시 말하면 신체의 전진력을 상쇄시켜 결국 다시 전진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과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리프팅탑까지 과정은 전진력 형성에 영향이 없고 정작 전진력은 축족의 힘을 통해, '길고 빠르게 내딛는다'라는 생각으로 만들어냈을 겁니다. 뭐 확실히 더 와일드해보이긴 하는군요. 와일드하게 얻어터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후지카와는 그러한 관성죽이기 동작을 많이 없앴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리프팅탑의 순간에 과거는 신체가 직립해 있는 반면 현재는 신체가 전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인위적으로 낮고 길게 스트라이드한다는 개념을 없애니 스트라이드폭은 분명 조금 줄어들었을 것이지만(그렇지 않았다면 흙이 뭍곤하던 축족 무릎의 높이가 올라가지 않았겠죠) 그의 메카닉은 훨씬 더 효율적이 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메카닉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같은 노력으로도 '더 위력적인 공을' '꾸준히' 뿌릴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하죠.

부차적으로 상체의 밸런스도 미세하게 더 나아졌네요.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하체의 변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후지카와의 코치님께서 '뒷무릎이 땅에 닿았잖나'라고 이야기하시며 코칭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상에서는 그렇게 나와있지만 정작 뒷무릎의 높이가 올라가게 된 효과는 리프팅과 스트라이드가 보다 일체감을 이루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결과입니다.

4. 후지카와 속구가 위력적인 이유

영상의 이야기가 일리가 있습니다. 후지카와의 릴리즈시 회전축의 각도는 지면과 수평에 가까워서 공끝이 굉장히 살아나가죠. 하지만 이것이 스탠더드한 코칭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B-코칭이론에 따르면 이건 후지카와만이 가질 수 있는 선물입니다. (물론 B-이론 안에서도 여기에 대해 반론을 가지고 계신 분이 존재합니다.) 후지카와는 높은 팔각도를 유지하면서도 신체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공을 잘 던질 수 있도록 설계된 때문이죠. 회전축을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서, 제 2의 후지카와가 되기 위해서 릴리즈 포인트를 더 위쪽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은 코칭이론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 신체구조 특성에 따른 알맞는 팔 각도가 있고, 그 특성에 맞는 공을 던지게 되어 있거든요.

왕첸밍이는 후지카와보다 더 낮은 릴리즈 포인트로 약간 기울어진 회전축을 가진 속구를 만들어내지만 그의 공은 매우 위력적입니다. 제이크 피비는 매우 낮은 팔 각도덕분에 회전축도 많이 기울어져 있지만 공끝이 매우 지저분한 역회전성 공을 뿌립니다. 따라서 후지카와 속구의 위력은 마구의 비밀이라기보다는 후지카와 개인의 특성으로 붙여두는 편이 더 나을 듯 싶습니다.



3. 세가지 종류의 구속



세 가지 종류의 구속

투수의 구속은 단순히 스피드건에 찍히는 물리적 속도(Real Velocity) 외에도 타자가 느끼는 체감 속도(Perceived Velocity) 및 제구력과 구종에 따라 결정되는 효과 속도(Effective Velocity)가 존재합니다. 관중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피드건이 나타내는 물리적 속도겠지만, 정작 던지는 투수와 타격을 하는 타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체감속도와 효과속도 이 두 개 뿐입니다. (단, 스피드건 속도는 코치에게는 투수의 피로도 여부를 알 수 있는 유용한 툴이 될 수 있습니다.)

체감 속도라는 것은 말 그대로 타격을 하는 타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구속을 말하며 투구 메카닉에 의해 결정됩니다. 투수의 릴리즈 포인트가 타자쪽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투수가 공을 잘 숨기면 숨길수록, 투수의 팔이 뒤에서 앞으로 넘어오는 동작이 빠르면 빠를수록, 투수의 어깨 회전 지연기술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타자가 느끼는 체감 구속은 더 빨라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투수의 릴리즈 포인트가 타자쪽으로 1cm 당겨질 때마다 타자가 체감하는 구속은 0.16km/h 더 빠르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똑같은 초속으로 던져진 공이라 할지라도 자기 스트라이드 길이의 85%에 달하는 지점까지 어깨 회전이 지연되는 마크 프라이어나 그렉 매덕스의 공은 다른 어떤 투수의 그것보다 더 빠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은 프라이어나 매덕스의 공이 비슷한 구속대를 가진 다른 선수의 공보다 더 빠른 타이밍에 홈플레이트에 도달한다는 이야깁니다. (이부분에 대한 자세한 원리 설명은 바이오메카닉 시리즈 제 1편에 잘 나와있습니다.)

효과 구속은 공의 로케이션별 타자가 최적의 배팅 포인트까지 도달해야 하는 '시점 차이'에 기인합니다. 일반적으로 안쪽공의 경우 타자가 허리를 빨리 돌려 자신의 앞발 훨씬 앞쪽에서 배팅 포인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공을 충분히 더 볼 수 있는 바깥쪽 코스에 비해 효과 구속이 더 빠릅니다. 바이오메카닉 피칭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138km짜리 속구의 경우, 안쪽 높은 코스로 들어올 경우 145km에 이르는 효과 구속을 가지게 되고 (그만큼 타자가 배팅 포인트로 빨리 나와야만 제대로 된 컨택트를 할 수 있음)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갈 경우 약 130km대 초반정도의 효과 구속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효과 구속은 투구 시퀀스(볼배합)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바깥쪽 체인지업을 접한 타자가 안쪽 낮은 속구를 대할 때 느끼는 효과 구속, 반대로 연거푸 안쪽 바깥쪽 속구를 상대하다가 가운데로 오는 체인지업을 대할 때 느끼는 효과 구속은 이전의 투구가 만들어 낸 잔상(殘像)효과 때문에 더 빠르게, 혹은 더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효과 구속차이가 큰 투구가 연속될수록 타자의 타이밍이 흐뜨러지기 쉽고, 반대로 구질이나 로케이션을 바꾼다 하더라도 효과 구속의 차이가 없는 공들을 연거푸 던질 경우, 그만큼 난타당할 위험성이 커집니다. NPA에서는 후자를 위험피치(at-risk pitch)라고 하여 타자가 특정 코스에 던진 특정 구종을 도저히 공략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드는 상황에서만 구사할 것을 권장합니다.

효과 속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볼배합의 예로 제이미 모이어 선수의 우타자 상대 볼배합을 들 수 있습니다.
모이어가 우타자를 상대로 하는 투구 패턴중 가장 자주 발견되는 것이 바로 바깥쪽 체인지업 승부입니다. 바깥쪽 체인지업은 모이어가 우타자를 상대로 던지는 구종들 중 가장 효과구속이 느린 구종입니다. 모이어는 보통 초구에 변화구 또는 바깥쪽 속구 스트라이크로 카운트를 잡고 이후 안쪽 속구-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의 순으로 타자를 요리합니다. 타자들은 모이어의 2구째 안쪽 속구에 배트 손잡이가 부러지는 3루땅볼을 쳐내거나 3구째 바깥쪽 체인지업에 타이밍이 흐뜨러져 평범한 유격수 땅볼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흔히들 체인지업은 빠른공 투수들에게 더 효과적이라거나 느린 공 투수들은 다양한 구종을 구사해야만 살아남는다던가 또는 볼배합을 귀신같이 계속 바꾸어야만 타자들에게 당하지 않는다는 식의 근거없는 cenventional wisdom(속설)이 존재합니다만... 실제로 체인지업으로 성공한 대부분의 투수들은 평균 또는 평균 이하의 구속대 투수들(매덕스, 글래빈, 모이어, 데이빗 웰즈, 마이크 무시나, 케니 로저스, 랜디 존스 등)이며, 이들중 모이어와 매덕스는 안쪽 속구를 다른 어떤 선수들보다 많이 뿌리며, 또 이들중 상당수가 속구와 체인지업 위주의 매우 단순한 투구 시퀀스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속설과는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데이빗 웰즈가 잘나가던 시절만 봐도 80마일 후반대의 속구 구사비율이 90퍼센트를 넘어갔었다고 하죠. 체감구속과 효과구속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투수들은 단순한 구종에 지극히 상식적인 볼배합으로 많은 타자를 아웃시킵니다. (투구전략과 관련되어 더 많은 정보는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의 모든 것 eBook 및 효과속도(EV) 이론 eBook에서 보다 자세히 접하실 수 있습니다.)





손혁이 깨달은 바이오메카닉 피칭의 위력


  


지난 2008년 초, 야구계 최고의 화제는 단연 박찬호의 부활이었다. 그 전해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방출과 마이너리그행의 수모를 겪었던 박찬호는, LA 다저스로 팀을 옮긴 뒤 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는 불과 일 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죽었던 볼 스피드가 살아나고, 불안하던 컨트롤도 안정된 모습이었다. LA 마운드에서 박찬호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에 여러 매체와 전문가들이 원인 분석에 나섰다. 친정 LA로의 복귀가 주는 심리적 안정, 불펜으로의 보직 변경, 새로운 주무기의 장착...... 온갖 분석이 난무했지만 ‘종결자’는 따로 있었다. 그해 5월 오랜만에 귀국해서 잠실야구장을 찾은 전 LG투수 손혁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찬호의 부활 이유로 딱 두 가지를 지목했다. 투수판을 밟는 위치의 변화, 글러브를 가슴쪽으로 당기는 동작의 수정.  

손혁의 설명은 논리적이었고, 과학적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이전까지 야구계를 지배한 통념과 크게 달랐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그는 미국의 피칭이론가 톰 하우스(Tom House)가 설립한 내셔널피칭협회(NPA)에서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바이오메카닉은 기존의 경험에 의존하는 지도방식과 달리 인체공학과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피칭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피칭이론. 박찬호의 부활도 그해 초에 NPA에서 투구폼 수정을 거친 결과로 가능했다. 많은 이가 손혁이 배우는 피칭이론과 그가 쓰고 있다던 책의 내용을 궁금하게 여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작년 12월. 마침내 손혁은 자신의 이름을 건 첫 피칭이론서 [새로운 세대를 위한 투수교과서]를 들고 돌아왔다. 꼬박 4년이 걸려 완성한 이 책에서 손혁은 미국에서 배운 바이오메카닉 이론에 자신의 현역 시절 경험과 지도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접목하며, 이론과 경험의 이상적인 조화를 꾀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풍부한 시각 자료와 쉽고 친절한 설명으로 성인은 물론 유소년 선수들까지 배려한 점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손혁은 “이 책을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이론과 전문서적이 나와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후배들이 부상 없이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출간 의도를 밝혔다. 

<야구라>는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에서 피칭이론가 겸 사업가로 돌아온 손혁을 만나, 새로 출간한 책과 그가 생각하는 피칭이론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소 인터뷰 분량이 길더라도 끝까지 읽어두면, 야구와 투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리라고 장담한다. 

인터뷰 진행 - 배지헌, 윤성현
인터뷰 정리 - 배지헌 


‘작가님’으로 데뷔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책 출간 이후 언론사 인터뷰와 사인회 등을 하며 보냈다. 또 전국의 리틀과 초등학교 야구팀을 다니면서 교습도 하고, 바쁘게 지냈다. (웃음) 

사실 책을 내려고 준비한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들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결과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국내에서 프로 선수 출신으로 바이오메카닉에 대한 책을 낸 것은 당신이 처음이다. 책을 낼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음, 그 얘길 하자면 꽤 긴데. 

상관없다. 

두산에서 뛴 2004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가서 1년 동안은 어학원도 다니고, 아내(한희원)의 골프 시합에도 따라다니면서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내의 골프 선생이 나한테 “우리 아들이 야구 선수인데, 폼이 괜찮은지 한 번만 봐달라”고 하더라. 아마 내가 야구선수 출신이란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던지는 모습을 봤더니...... 

어땠나. 

투구폼이 너무나 ‘예뻤다’. 정말 잘 배운 투구폼이었다. 그래서 누구에게 배웠냐고 물었더니, 톰 하우스한테 배웠다고 하더라.  

그 유명한 톰 하우스 말인가. 피칭 메카닉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톰 하우스는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주: 빅리그 투수 출신인 톰 하우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메카닉 이론가로 전설적 투수 놀란 라이언을 텍사스 시절 지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칭연구소인 NPA의 설립자인 그는 현재 미 남가주대학의 투수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맞다. 나도 톰의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선수 시절에도 그 사람이 쓴 책을 몇 권 본 적이 있으니까. 알고 보니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더라고. 다음날 당장 찾아가서는 톰한테 ‘재활에 대해 배우고 싶다. 아는 곳이 있으면 소개라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톰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뭐라고? 

자기는 왜 동양권 사람들이 재활부터 배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재활은 미리부터 다칠 것을 염두에 두는 거라고, 재활 이전에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게 낫지 않느냐는 거다. 올바른 운동과 좋은 폼을 배우게 되면 부상을 늦출 수도 있고 어쩌면 야구하는 동안 부상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아프고 난 다음을 생각하냐는 게 톰의 얘기였다. 

백번 옳은 얘기다. 

나도 그 말에 완전히 혹했다. (웃음) 그래서 바로 톰 하우스의 피칭 스쿨에 등록해서 선수들 하는 것과 똑같이 교습을 받았다. 말로만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운동도 해보고 배운대로 던져보면 이해도 빠르고 다른 사람 가르칠 때도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렇게 몇 달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어느 날 톰이 나한테 와서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을 했다. 

이번엔 또 무슨 얘기였나. 

“써니, 혹시 너 야구 다시 하고 싶은 생각 없어?”라고 묻더라. 물론 야구야 당연히 하고 싶지. 그만둔지 몇 달이 됐는데도 계속 아쉽고 생각나고 했으니까. 하지만 부상으로 그만둔 내 입장에선 ‘그게 가능한 소린가’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톰의 다음 말이 더 충격이었다. 

뭐라고 하던가. 

“써니가 지금 던지는 걸 봐선, 한 7~8개월 정도만 운동하면 92마일(148km/h)은 충분히 던질 수 있겠는데”라고 했다. 

......거짓말.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국내에서 뛸 때 최고구속이 143, 4km/h였는데, 게다가 만난지도 얼마 안 된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믿길 리가 없지 않나. 하도 내가 의심스러워하는 눈치니까, 톰이 그러더라. “어차피 너는 계속 배우는 입장이니까, 정 선수를 다시 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마음가짐 갖고 하면 더 좋지 않겠냐.” 그래서 그 말대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몇 달을 열심히 운동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나. 

기적이라도 일어났나. 

그랬다. 정말로 훈련을 하면 할수록 구속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나중엔 정말 92마일이 찍혔다. 최고구속이 아니라 평균구속이 92마일이 나왔다. 현역 때 144km/h는 평균이 아니라 최고구속이었는데, 그 이상을 꾸준히 던질 수 있게 된 거다. 그때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투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거니까. 얼마 지나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와서 내 투구를 보기 시작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스카우트는 나한테 ‘한국팀과의 계약은 어떻게 된 상태냐’고 물었다. 

출처 : MLB 토론방
글쓴이 : bluebir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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