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련/천재(prodigy)

[스크랩] ['Stretford End'님 번역] [NY타임즈] 아약스 유스 르포

작 형 2011. 9. 23. 04:50

 이글루스의 'Stretford End Football Archives'블로그(http://stretford.egloos.com)에서 그대로 퍼온 내용입니다(수정, 발췌 일절 없음. 빨간색 밑줄은 제가 친 것입니다). 'Stretford End'님께서 뉴욕타임즈 매거진의 기사를 번역하신 내용이라고 하네요. 미국인의 시각에서 미국인 칼럼니스트가 쓴 글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읽어주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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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 매거진 칼럼(2010.5.31) How a Soccer Star Is Made@@

 

 칼럼니스트: Michael Sokolove

 번역해 주신 분: 'Stretford End'님(http://stretford.egloos.com)

 뉴욕타임즈 원문기사 링크(http://www.nytimes.com/2010/06/06/magazine/06Soccer-t.html?pagewanted=1)

 'Stretford End'님 번역글 링크(http://stretford.egloos.com/2585521)

 

 

 네덜란드 축구 클럽 아약스는 자신들이 보유한 유스 아카데미를 이렇게 부른다. De Toekomst.  – 우리말로 미래라는 뜻이며 영어로는 “The Future”다. 아카데미의 위치는 암스테르담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근처다. 축구 운동장 8개와 2층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 내부에는 라커룸, 교실, 헬스장, 코치 사무실, 스포츠 과학자 사무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아약스 선수들은 건물 내에 있는 산뜻한 카페테리아에서 식사를 한다. 방문객들 역시 창 밖의 훈련장을 지켜보며 맥주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화장실에서부터 코치진 경력까지 아카데미의 모든 것이 우수하다.  – 현(現) 아약스 코치 중 일부는 네덜란드 대표팀 출신이다. 그렇다, 한 때 아약스는 유럽을 주름잡는 탑클래스 팀이었다. 하지만 축구가 세계화함에 따라 일류 선수들은 더 부유한 리그를 소유한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진출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아약스의 주된 목표는 유소년 공장으로 변화했다. 이제 아약스는 선수를 길러내 세계 시장에 종종 비싼 이적료를 받고 내놓는다. 잉글랜드 유스 시스템 설계자인 제닝스(Huw Jennings)씨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축구에서 유스 시스템에 관련된 생각들은 모두가 아약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분야에서 아약스는 일종의 선구자입니다.”

 

 광활한 기회의 땅 미국에서는 “스스로 만들어진 운동선수”를 칭송하는 경향이 있다. 설령 꿈을 이루는 것이 힘들다 해도, 그 꿈을 위한 노력, 그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행운을 스스로 찾아내길 바라는 거다. 이에 반해 네덜란드는 비좁은 국토, 그것도 대부분 해수면보다 낮은 땅을 가지고 있다. 자연히 네덜란드 사람은 물을 다루는데 있어 전문가여야 했다.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했으며,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에 있어 전문가들이자,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알아야 했다. 축구 선수를 길러내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축구 유스 양성에 감상적인 면이나, 환상 같은 것이 없다.


 내가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를 방문한 날은 마침 21명의 새로운 선수가 입학하던 날이다. 대부분이 7, 8살 정도였고, 거주지는 모두가 암스테르담 인근이었다. 스카우터가 이들을 미래의 프로 축구 선수 감이라 판단했음은 물론이다. 그들을 보러 갔더니, 4대4 미니 게임을 하고 있다. 작은 경기장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고, 둘레를 하키 경기장처럼 벽이 둘러싸고 있어 볼을 뻥 차버려도 바로 튕겨져 나와 플레이를 이어갈 수 있다. 북해(North Sea)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11월이었으나 소년들이 입은 옷은 가벼운 저지와 펑퍼짐한 반바지가 전부다. 코치가 골키퍼를 맡아주고 있어 선수들은 주눅들지 않고 힘껏 볼을 골대로 차 넣는 모습이었다. 일견 우스꽝스럽기도 하나, 웃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이 진지하다.

 

 일련의 테스트 이후 선수들은 공식적으로 아약스 아카데미에 입단하게 된다. 내 옆에서 선수 이름과 등번호가 적힌 로스터를 들고 있는 남자들이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그 중 한 명인 데 용(Ronald de Jong)씨의 말을 들어보았다. “결과는 중요치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누가 가장 많은 골을 넣는가, 누가 가장 빨리 뛰는가를 보는 게 아니에요. 이 친구들은 여전히 성장 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떻게 뛰는가에 주목합니다. 발의 앞부분을 이용해서 올바르게 뛰고 있는가? 볼 다룰 때 창조성이 보이는가?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녀석인가? 전 이런 게 향후 선수의 성장을 예측하는데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유럽과 세계 대부분의 축구팀이 그렇듯이, 아약스는 마이너 시스템을 가진 빅리그 야구팀과 유사하다. 다만 그 대상에 어린이들까지 포함될 뿐이다. 아마추어 축구 선수 출신인 데 용씨는 주말을 투자해 지역 내 아마추어 경기를 보러 다니는 60명의 스카우터 중 하나다. 이들 대부분이 자원해서 스카우터로 일하고 있으며, 데 용씨가 주중에 하는 일은 교도소 간수(prison warden)다. 담당하는 지역은 헤이그(Hague)에서 하를럼(Haarlem)까지 인데, 데 용씨는 이 지역을 “꽃으로 아름다운 곳, 동시에 유소년 선수 발굴에도 최적인 곳”이라 묘사한다. 때때로 한 선수를 몇 달, 혹은 몇 년에 걸쳐 지켜볼 때도 있다고 한다. 일단 데 용씨가 추천한 선수들은 아약스에 고용된 전업 스카우터, 혹은 코치, 심지어 아약스 아카데미 장이 직접 관찰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대개 아약스에서 당신의 자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는 공식 편지를 보냈을 때다. 이 초청장이 거부되는 일은 절대 없다. 아약스가 부른다? 야구에 미친 소년이 방과 후 집에 오니 양키 스타디움에 와서 같이 한 번 야구해보자는 초청장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입단한 이들 중에도 데 용씨가 발굴한 8살짜리 꼬마가 있다. 데 용씨는 이 소년, 가진 재능이 무궁무진하다 말한다. 하지만 아약스 아카데미에 입단한 건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도전과제의 시작에 불과하다. 아약스는 어린 선수들을 무한 경쟁의 장에 던져 놓고, 계속해서 발전하는 자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어린이에게는 가혹한 환경일지 몰라도, 축구 좀 차는 녀석과, 향후 대표팀 레벨에서도 뛸 수 있을 진짜 천재를 구분하는 데에는 최적이다.

 


 아약스 아카데미에는 늘 200명 가량의 선수가 훈련을 받고 있다. 나이대는 7세부터 19세까지이며, 모두가 남자다. (아약스에는 여자 축구선수를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없다) 매해 특정 나이대 선수 중 일부가 다음 해를 맞이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자리에는 늘 새로운 재능들이 채워진다. 성과를 평가받는 건 유소년 뿐만이 아니다. 내가 암스테르담에 방문하기 며칠 전, 아약스에서 오래 있었던 코치 몇몇이 기준에 미달한다 판정받고 집에 갔다고 한다. 짤린 이들 중에는 오늘 내가 만난 15세 아약스 유스 딜런(Dylan Donaten Nieuwenhuys)의 담당 코치도 있었다.

 

 딜런의 아버지 루이(Urvin Rooi)씨는 암스테르담에서 내 가이드를 해주었다. 사교적인 그는 나를 다른 유스 선수들 부모들에게 소개시켜 주었으며, 훈련장과 정거장을 왔다갔다 하라고 스쿠터도 빌려주곤 했다. 루이씨는 미국 스포츠만 취재하던 내가 접하지 못했던 문화들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의 진지함을 관찰하던 나는, 선수들이 정규 훈련 시간 이외에는 더 뛰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루이씨는 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당연한 일이죠, 아약스는 선수가 다치거나 지치길 원치 않거든요. 클럽 입장에서 선수는 일종의 자산이에요. 기업이 최우선으로 하는 게 뭐겠습니까? 자기 자산을 보호하는 거죠."

 

 루이 씨는 유스 아카데미에 입단하는 선수들이 아약스의 이상에 이끌린다고도 설명해 주었다. 1군 팀은 홈구장에 5만명의 팬을 가지고 있는데다, 1960년대에 확립한 축구 역사 상 가장 혁신적인 스타일의 본고장이기도 하다는 거다. 빠른 패싱, 포지션 체인지를 동반한 공격적인 스타일로 알려진 "토탈 풋볼" 말이다. "어린 친구들은 말이죠, 아약스 컵으로 차 마시고, 아약스 잠옷입고 아약스 담요 덥고 잘 정도에요." 루이씨에 따르면 매년 봄마다 소년들은 내년에도 아약스에서 뛸 수 있을까 걱정에 휩싸인다고 한다. "학교에서 F학점 받는거랑 비슷하다 보시면 되요. 잠도 못자고 이불에 오줌 싸는 거죠."

 

 아카데미는 선수들 피지컬 뿐만 아니라 멘탈도 단련하고 있는 셈이다. 딜런에게 자기 코치가 해고된 걸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딜런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축구계가 좀 터프하죠. 코치님은 우리들 중 누군가를 집에 보내곤 했어요. 이제는 집에 가는게 어떤 기분인지 아시겠죠."

 

 

 늦은 오후, 아약스 아카데미 건물 내 카페에서다. 나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어린 선수들을 맡고 있는 코치 패트릭(Patrick Landru)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패트릭씨는 내가 쓰고 있던 메모장을 달라고 하더니 다섯 명의 이름을 적고는 뒤에 괄호를 열고 이렇게 적어 넣었다. “80 million euros.” 다섯 명의 이름은 아약스가 길러낸 현역 축구선수들이다. 모두가 어린 아이일 때 아카데미에 입단해 끝까지 살아남아 월드클래스가 되었다. 80 million 유로는 아약스가 이들을 다른 클럽에 이적시키며 받은 금액이라 한다. (유럽 축구에서는 팀이 이적료를 지불하고 나서야 선수와 계약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웨슬리 스네이더(Wesley Sneijder). 5명의 이름 중 맨 위에 적혀 있는 이름이다. 현 시점 아마도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선수일 그는 7살부터 아약스 아카데미서 뛰어 왔다. 23살의 스네이더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27 million 유로를 주고 데려갔다. (스네이더는 지금 인테르에서 뛰고 있는데, 인테르는 이탈리아 챔피언이자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이다) 다른 네 명 역시 스네이더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밖에 있는 클럽에서 고액 주급을 받고 뛰고 있는 유망한 선수들이며, 네덜란드 대표팀의 일원이다.

 

 대표팀에서 전도유망한 반 더 비엘(Gregory van der Wiel)은 이 5명에 들어 있지 않다. 여전히 아약스에서 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럽에서는 비엘 역시 곧 비싼 값에 이적할 거라 생각하고 있다. 진한 문신에 랩 마니아인 비엘은 휴가를 마이애미 해변가에서 보내는 걸 즐긴다. 이제 22살인 그는 14살 때 좋지 않은 태도 때문에 아약스 아카데미서 짤려 집에 간 적이 있다. "그 때는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으려 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였죠" 비엘이 내게 한 말이다. 비엘은 이후 3년간 (지금은 없어져 버린) 한 네덜란드 팀 아카데미에서 뛰다가 아약스로 돌아왔다. 열악한 시설에 형편없는 코치진도 문제였지만 유니폼마저 엉망이었다 비엘은 기억한다.

 

 아약스 1군 팀 감독인 마틴 욜(Martin Jol)에게 물었다. 갓 재능이 꽃피기 시작한 선수들을 여타 빅클럽에 보내야할 걸 알면서도 키워나가는 게 힘들지 않냐고. 욜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 그게 아약스의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선수들을 발전시켜 가능한 빨리 1군에 올린 다음 많은 금액을 받고 이적시키는 거죠." 미국에서는 돈이란 스포츠를, 특히 유스 스포츠를 타락시킬 뿐이라 생각한다. 아약스에서는 반대다. 많은 투자는 많은 보상으로 돌아오며, 아약스 아카데미는 어린 소년들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의 빅네임으로 키워나가는 실험실이다.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는 기숙학교가 아니다. 선수들은 모두 암스테르담 반경 60km 이내에 거주한다. (일부는 아카데미에 나오기 위해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기도 한다) 아약스는 학교에서 소년들을 태워 오기 위해 버스 20대를 운영하며, 애들을 교육 시켜줄 교사 15명도 고용하고 있다. 부모들은 단지 1년에 12 유로 정도의 보험금만 내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가 클럽이 부담한다. - 코치 24명 분 월급, 대회 참가 교통비, 유니폼 및 기타 장비비, 시설 운영비 모두를 말이다. 아약스가 담당하는 구역 밖에 전도유망한 선수가 있다면 아약스 이외 다른 프로 클럽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참여한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무료다. (미국에서는 "뛰려면 돈내라"(pay to play) 모델이 지배적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으면 부모가 부담해야 할 돈이 그만큼 커지는거다)

 

 아약스도 실수를 저지른다, 그것도 꽤 자주. 집에 보내야 할 소년과 그렇지 않은 친구를 잘못 구분해, 아약스 이외 다른 클럽에서 스타가 되버리는 거다. 생산성만 따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데리고 있는 유소년 중 극히 일부만이 엘리트 프로 선수가 된다. 그래서 아약스는 기본적인 재능을 가지지 못한 어린이에게까지 실현 불가능한 꿈을 불어넣는 일은 없다. 아약스 홈페이지는 이렇게 적어 놓고 있다. "공지 -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는 개인적인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역주: 아약스가 판단했을 때 잠재력이 보이는 친구들만 데리고 오지, 지원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말합니다)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장인 레이커링크(Jan Olde Riekerink)씨는 하루 종일 필드를 오가며 선수들을 관찰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보통은 운동장 후면 안보이는 곳에 있다가 더 열심히 하라고 재촉하거나 몇몇 기술을 지적해 줄 때나 모습을 드러낸다. 루이씨가 말한다. "레이커링크 씨는 항상 보고 있어요. 스파이 같습니다."

 

 5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나는 아약스 15세 유스들이 네덜란드의 다른 프로 클럽 유스 아카데미와 가지는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뒤에 레이커링크씨가 와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파카를 입고서 작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아약스 유스팀이 두 골을 넣으며 경기를 지배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기술들이 참 인상적이라 말을 걸어 보았다. (사실 나는 아약스 유스들이 보여주는 수준높은 경기력에 항상 감탄한다) 레이커링크씨가 답했다. "그래요? 내가 보기에는 엉망입니다. 템포조절이 글렀어요. 너무 느립니다."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에 소년들의 고함소리나 웃음소리는 들을 수 없다. 오로지 공차는 소리와 코치가 내리는 지시 사항만 들릴 뿐이다. 시끌벅적한 단체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오히려 테니스, 골프, 체조같은 개인 종목에 어울리는 엄격한 분위기다. 하지만 아카데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유소년들을 너무 굴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약스 유스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비지니스다. 12세 이전까지는 한 주에 세 번 훈련을 할 뿐이고, 경기는 주말 한 경기가 전부다. 레이커링크씨가 말했다. "어린 친구들이니까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유소년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가족이 있죠. 그걸 존중합니다. 아약스 훈련시간이 아니면 길거리에서 축구하며 놀겠죠. 친구들하고 뛰어다닐 겁니다. 그런 거도 중요하다 봅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없이 맘껏 볼을 찰 수 있으니까요."

 

 15세가 되면 한 주에 다섯 번씩 훈련 시간을 가진다. 전 연령대에서 훈련 시간 대부분은 미니 게임을 하거나 다양한 배치로 서서 기술을 익히거나 한다. 마주보고 가까인 선 상태서 재빨리 움직이며 가능한 세게 볼을 차는 거다. 미국에서 이런 종류의 훈련은 대개 워밍업 과정일 뿐이다. 코치는 옆에서 핸드폰 통화하거나 학부모들과 잡담하거나 하며 설렁설렁 지켜보는 정도다. 아약스 아카데미서는 이 과정이 - 볼터치를 향상시키고, 볼을 다루는 기술을 늘리는 이 과정이 - 주된 훈련이다. 아약스를 참관하러 노르웨이 프로 클럽에서 온 코치 하나가 말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장면 많이 보실 겁니다. 모든 훈련이 볼터치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긴 해요. 그치만 네덜란드에서는 정말 진지합니다. 모두가 열심히, 또 아주 빠르게 볼을 차대죠. 이게 네덜란드 스타일입니다. 정확하고도 공격적입니다."

 

 반 더 비엘은 아약스 아카데미의 디테일 충만한 훈련 방식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같은 훈련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그보다 몇 배를 또 반복합니다."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를 취재하면서 미국 축구에 대한 오해를 수도 없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미국이 축구한다는 걸 신기해 했으며, 미국 축구 역사가 고작 몇 십년 정도라 생각하거나, 별 인기가 없다고, 혹은 정상급 남자 운동선수들이 하찮게 여기는 종목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 미국 여자 축구 대표팀이 워낙 성공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역사학자이자 네덜란드 축구 저널리스트인 콕(Auke Kok)씨와 점심을 함께 할 때였다. 콕씨는 자신이 생각한다는 가설 하나를 이야기했다. 미식 축구가 가지는 폭력성(brute force)이 축구의 우아함, 세련됨과 대비되지 않느냐는 거다. "우리 축구가 너무 스타일리시하고, 너무 여성적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해 왔어요. 미국인들에게는 너무 나약하게 느껴질 거라는 제 생각이 맞나요?"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해 주었다. 이런 엉뚱한 이론이 놀랍지는 않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부국 미국이 축구에서만큼은 강국이 아닌데 대해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어리둥절해 하는 건 당연하다.

 

 실은 미국에서 3백만 명의 18세 이하 소년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물론 전세계 최고 레벨 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정상급 선수를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거도 사실이다. 그래도 미국 축구는 발전하고 있다. 작년 여름 컨페더레이션 컵에서 브라질에 이어 깜짝 2위를 차지한바 있으며, 32개국이 참여하는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도 비교적 쉽게 진출했다. (역주: 북중미 예선에서 멕시코를 제치고 1위로 진출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5월에 나온 글입니다) 미국이 그룹 스테이지를 통과해 16강에 진출한다고 놀랄 이는 없을 거다. 하지만 미국이 전통의 강호 독일이나 이탈리아, 아르헨티나(우승후보 브라질과 스페인은 말할 것도 없다)를 물리치며 우승을 차지한다면 크나큰 이변으로 여겨질 것이다.

 


 또 다른 우승 후보 한 팀을 꼽자면 네덜란드가 될 것이다. 월드컵 우승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지만 최고였던 팀, 영원한 도전자 네덜란드. 1,700만 명 남짓한 인구에 불과하지만, 아약스 출신 선수들이 주축이 된 네덜란드 대표팀은 토탈 풋볼 전통에 입각해 뛰고 있다. 볼이 자신에게 오기 전에 무엇을 할지 미리 알고 움직이며, 볼을 받았을 때는 이를 멈추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다. "Brilliant Orange"의 저자 데이비드 위너(David Winner)씨는 자신의 책에서 네덜란드 식 접근법을 "몸으로 뛰는 체스(physical chess)"라 불렀다. 더치들은 오만할 정도로 자신들 축구를 자랑스러워 했다. 지루할 정도로(cloying) 수비적인 이탈리아 축구, 킥앤러시(boot-and-chase)의 잉글랜드 축구를 증오했다. 때때로 경기 결과보다 플레이의 예술성에 더 관심있어 보일 정도였다.

 

 네덜란드 스타일(사실상 아약스 스타일이다)에도 철학적인 본류가 있다.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 1970년대 아약스 스타이자, 축구 스타들이 즐비한 명예의 전당에서 펠레 바로 아래 정도로 평가되는 인물. 야구로 치면 좀 더 박식한 요기 베라(Yogi Berra) 정도? (역주: 이 글은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실렸던 글이라는 걸 명심하시길..) "너무 많이 뛰지는 마라." 크루이프가 한 말이다. 선수들이 종종 의미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걸 경계하는 의미다. "적절한 순간, 적절한 장소에 가 있어야 한다. 너무 빨라서도, 너무 늦어서도 안된다."

 


 지난 3월 아약스 아카데미에서 고속도로 하나 지나면 있는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미국 대표팀과 네덜란드 대표팀의 친선 경기를 관전했다. 종료 직전 미국이 골을 넣어 다행히 스코어는 2-1로 끝났지만, 경기는 어릴적 운동장에서 하던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 "이 볼 우리 거니까, 건드리지마!" 더치들이 볼을 이 선수에서 저 선수, 경기장 여기저기서 연결해 나가는 동안 미국 선수들은 거의 볼을 만져보지도 못한채  쫒아다니기만 했다. 미국이 볼을 잡아봐도, 패스는 저 멀리 날아가거나 경기장 밖으로 나가기 일쑤였다. (역주: 실제 데이터를 보면 점유율은 네덜란드 65%, 미국 35% 였습니다)

 

 다른 대표팀, 다른 프로 클럽도 네덜란드를 상대할 때면 (그리고 바르셀로나를 상대할 때면) 비슷할 거다. - 바르셀로나는 크루이프가 아약스를 떠나 뛰었던 클럽이며, 8시즌 동안 감독했던 클럽이기도 하다. 이런 유형의 플레이에는 높은 수준의 개인 기량이 요구된다. 선수들은 양발, 그리고 발의 어느 부분을 이용해서도 볼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비좁은 공간을 뚫고 골로 향해 갈 수 있는 마법같은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미국-네덜란드 경기가 끝나자 마바이크 감독은 미국이 보여준 "잘 조직된"(well-organized) 수비를 칭찬했다. - 사실이긴 하나 실은 쓴소리가 아닐까. 달리 할 말이 뭐가 있었겠는가? 미국 대표팀은 뒤로 물러서서 간격을 좁히는, 살아남기 위한 전술을 택했다. 팀 하워드(Tim Howard)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이 아니었다면 네덜란드 대표팀이 6골 이상을 넣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역주: 네덜란드의 슈팅수는 10개, 온타겟은 6개였습니다)

 


 물론 한 경기에 불과하지만,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를 관찰하고, 미국 축구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을 더 날카롭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미국 축구가 전도유망한 유망주들을 키워내는 방식은 네덜란드나 다른 축구 강국들이 하고 있는 일과 일견 크게 다르지 않다. -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정반대다.

 

 미국은 가장 어린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팀으로 묶어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려 한다. 주요 축구 강국들은 월등한 기술을 가진 개별 선수를 키운 후 이들을 하나의 대표팀으로 묶어낸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유럽 사람들이 집단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자신들은 개인주의자라 여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반대다. 유럽인들이 개별 선수들을 자산으로 키워나가는 데 반해, 미국은 개개인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않는다. 유소년을 가르치는 대부분 미국 감독들이 의식적으로 그러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미국 방식은 다소 민주적이다. 팀원 전체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미국 이외에서는 집단을 희생해서라도 개별 선수에게 집중하는 게 익숙한 방식이다. 아약스 선수 출신이자, 오랫동안 클럽 이사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David Endt)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말이죠, 유스 레벨에서 한 경기 승리하는 거 보다 재능 한, 두명을 길러내는 데 더 집중합니다."

 

 미국인들은 연습보다 경쟁을 중요시 한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기와 연습간의 비중이 왜곡되어 있는 거다. 미국 10대들은 한 시즌에 서로 다른 소속팀 두, 세 개에서 100경기 이상을 치루기 때문에 훈련할 시간도 없고, 막상 훈련 시간이 와도 에너지가 남아 있지를 않다. 그 결과 미국의 최고 레벨 선수는 발전이 멈추었다. 빠르고 열정적이긴 하나, 기술이 딸리고 재치도 부족하다. 미국 17세 이하 대표팀 감독이었고, 지금은 MLS(Major League Soccer) 필라델피아에서 유스 시스템을 담당하고 있는 핵워스(John Hackworth)씨가 내게 한 말이다. "미국에서 어린이가 축구를 시작한다고 하면, 당장 심판이 붙고 부모들은 경기장 옆에서 관전하고 앉아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 이 경기의 결과는 더욱더 중요해지죠. 축구 배우는데 완전 역효과입니다. 미국 축구에서 가장 안좋은 점이에요."

 


 축구 선수 키워내기의 최종 단계에서도 미국은 다르다. 다른 국가들은 이렇다. 10대 후반 선수들은 학교를 졸업하는 거랑 유사하다. 몸이 거의 다 자랐으며, 기술을 더 날카롭게 연마했고, 축구 전술에 대해서도 수준높은 이해도를 가졌다. 이제 혹독한 클럽 내 경쟁을 통해 1군 팀에 합류하고자 노력할 시기라는 거다. (마이너 리그 소속 선수가 빅리그 콜업되려고 경쟁하는 거와 비슷하다 보면 된다)

 

 근데 정상급 미국 축구선수들은 그 나이에 여전히 대학에서 뛰고 있다. - 미국 이외 축구 국가에서는 이를 이상하다 여긴다. 한 시즌에 고작 서너달 정도 대회를 치룰 뿐이다. 만약 대표팀 레벨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라면, 소속팀이나 심지어 상대팀에도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없을 거다.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해도, 결국 그에게는 너무 쉬운 경쟁인 거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미국 대표팀 23인 중 15명은 대학 축구 소속이다. 나머지 8명은 대학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대표팀 내에서 핵심 전력이다. 도노반(Landon Donovan), 비즐리(DaMarcus Beasley), 팀 하워드(Tim Howard), 그리고 앞날이 기대되는 알티도어(Jozy Altidore)와 마이클 브래들리(Michael Bradley, 대표팀 감독 밥 브래들리 아들이다)까지. 이들은 대학을 거치지 않았기에 미국 최고의 축구선수가 된 걸까? 아니면 10대임에도 프로 클럽에서 뛸만큼 재능이 있었기에 대학을 건너뛴 걸까? 아마도 대답은 둘 다일 거다. 축구계에서 선수가 기량 향상하려면 대학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미국만큼 대학-스포츠 시스템을 지지하는 국가는 없다. 다른 어느 국가도 엘리트 운동선수가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리미어 리그 풀럼에서 유스 아카데미장을 맡게 된 제닝스(Huw Jennings)씨가 말했다. "미국은 17세에서 21세 사이 선수들에 주요 약점이 있습니다. N.C.A.A. 시스템이 일종의 벽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보면 대학 가는게 좋은 일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는 그런 식으로 운동선수를 길러내지 않죠."

 

 어느 날 아약스에서다. 평소같았으면 비어있을 운동장 옆에 서서 코치 하나가 선수 붙잡고 개인지도하는 걸 30분간 지켜보았다. 선수의 이름은 플로리안(Florian Josefzoon), 유연한 몸놀림을 보유한 예비 스타, 꽉 찬 18세다. 이 친구를 지도하는 코치는 브라이언 로이(Bryan Roy)씨로 네덜란드 국가 대표 출신이다. 로이씨는 플로리안 앞에서 갈짓자 스텝을 밟고, 크루이프 턴(pirouette)을 한 후에야 공을 넘겨 준다. 로이씨를 상대하는 플로리안은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는 코치의 움직임을 배워보려 애쓰고 있다. 이건 마치 댄스 교습의 한 장면 같다. 플로리안이 하나를 마스터하면, 로이 코치는 새로운 걸 보여준다. "재능이죠. 걔도 윙어고 나도 윙어입니다. 지금 플로리안은 18세 이하 팀과 1군 팀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따라 잡기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수행 중이에요. 저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얘를 돕고 있구요."

 

 바로 옆에 있는 운동장에서는 육상 선수 전문 컨설턴트인 욘카인드(Ruben Jongkind)씨가 15살 짜리 선수의 자세와 걸음걸이를 교정하고 있다. 지도하고 있는 선수는 충분히 빠르지만, 상체 움직임이 충분치 않다고 욘카인드씨가 말합니다. "오리처럼 뛰네요, 질질 끌며 말이죠. 그럼 에너지 소모가 큽니다. 그래서 가속 패턴을 바꿔주려 하죠. 그래야 경기 끝날 때까지 처음처럼 뛰어다닐 수 있으니까요."

 

 욘카인드씨는 몇 주째 이 선수를 지도해 왔다고 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의식하고 있을 때는 가르쳐 준 자세가 나오지만, 무의식 중에는 이 자세가 안나오는 수준"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정식 경기를 뛰면 예전 자세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나는 욘카인드씨에게 미국에서는 나쁜 자세라도 빠른 선수라면 그냥 내버려 둔다고 말했다. "교정할 수 없는 건 없어요. 가능만 하다면 항상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욘카인드 씨 대답이다.

 


 아약스는 유스 아카데미에 입단한 모든 선수에 대해 자세한 서류를 만들어 나간다. 클럽의 운동 생리학자(exercise physiologist) 베르슬루트(Olav Versloot)씨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였다. 한 14세 유스 선수가 사무실을 방문해 체지방률 측정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 했다. 10대 중반에는 13%까지가 허용되는 수치다. 17세가 되면 기준은 12%로 엄격해 진다. (이보다 어린 친구들은 대개 말랐기 때문에 빡빡하게 감독하진 않는다) 베르슬루트씨가 말했다. "처음 한 번은 관대합니다. 식단 조절을 권장할 뿐이죠. 허나 두번째 검사에서도 체지방률을 기준치 내에 유지하지 못하면 영양사와 특별 식단을 짭니다. 부모들도 호출되고,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도 준비하지요."

 

 삐죽 솟아나온 머리, 긴 구레나룻, 검은 선글라스..최신유행에 민감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베르슬루트씨다. 9월에 유소년 체력 테스트 진행하는 걸 지켜보았다. 하루는 16세 선수들이 5미터 단위로 시간을 재는 센서를 단 채 30미터 전력질주 테스트를 했다. 베르슬루트씨는 처음 5미터와 10미터 기록에 가장 주안점을 둔다. "왜냐면 이 거리가 축구에 필요한 거리기 때문이에요. 경기 들어가면 5미터에서 10미터 정도를 가속하는 상황이 수없이 발생하거든요."

 

 3월에 아약스를 재방문했을 때는 선수들이 힘든 왕복 달리기를 하고 있는 걸 관찰했다. 이는 농구선수들이 "자살 훈련"(suicides)으로 부르는 과정이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왕복 달리기를 하고 잠깐 쉬고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하나 둘씩 나가떨어져도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훈련을 계속한다. 선수들은 심박수를 체크할 수 있는 모니터를 각각 달고 있다. 베르슬루트씨 말이다. "선수들이 말합니다. '힘들어요, 저는 여기까지인가 봐요.' 우리는 심박수를 보고 이렇게 답하죠. '모니터는 그렇지 않다는데? 넌 지금 최대치에 고작 75% 수준이야. 그러니 이번주 내로 한 번 더 훈련하자.' 이렇게 말하면 선수들은 이 훈련이 벌칙이 아님을 이해합니다. 실은 더 발전할 기회이죠."

 


 사실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는 스포츠의 낭만과 거리가 먼 곳이다. 여기에 속한 그 누구도 축구가 사업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베르슬루트씨 말이다. "스네이더를 이적시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선수 하나 이적료로 몇 년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지요."

 

 "David Endt"(발음 아시는 분?)씨는 선수단의 이동과 물류를 담당하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클럽의 역사가를 자처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아레나 꼭대기에 있는 사무실은 미니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사무실 벽은 기억할만한 사건들의 기록으로 가득차 있다.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Endt씨는 자랑스레 가위 한 쌍을 보여주었다. 몇 십년 전 유명했던 라커룸 사건에 아약스 선수가 동료들에게 휘둘렀던 가위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개구쟁이같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제가 들고 있네요." Endt씨는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를 두고 클럽의 심장박동을 들을 수 있는 곳이라 평했다. "아약스의 공기를 맛볼 수 있는 곳이죠. 전세계 사람들이 클럽을 방문해 이런 질문을 날립니다. '대체 비법이 뭡니까?' 근데 암스테르담이라는 땅이 그래요. 진취적이고, 예술적이기도 하며, 다소 건방지죠. (arrogant, 역주: 그렇습니다. 토탈풋볼과 그 후손들에게 흐르는 arrogancy! 남아공 월드컵 마바이크 감독은 이 arrogancy를 제어하겠다는 감독이었죠) 우리가 하는 방식을 관찰해 갈 수는 있습니다. 허나 우리가 하는 방식을 카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약스는 1995년에 마지막으로 유럽 대회 정상에 섰었다. 공교롭게도 그 해는 유럽 법정이 보스만 룰을 승인해 축구 선수들이 계약 만료 시 자유 이적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 해이기도 하다. 그 후 아약스는 최정상 레벨에서 내려왔고, 유럽 대회 정상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 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 빅클럽들의 몫이 되어 버렸다. Endt씨는 선수를 파는 정책이 - 벌어들인 이적료로 클럽을 운영하고 선수들 주급주고 하는 정책이 - 이해는 가나 후회스런 전략이라 말했다. "물론 다들 현실을 인정합니다만, 진정한 아약스 맨은 속으로 울고 있을 겁니다."

 


 아약스는 암스테르담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으나, 73%에 달하는 지분이 특정인 소유로 남아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고 있다. 운영진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이는 없지만, 유스에게는 항상 높은 기대치가 요구된다. Endt씨 말이다. "우리는 말합니다.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고. 이건 유스들에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일이죠. 뭘 어떻게 하든, 더 잘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건 힘든 상황이니까요."

 

 베르슬루트씨에 따르면 한 시즌에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 출신의 절반 정도가 1군 팀에 자리잡아 프로 생활을 이어가고, 나머지 일부는 2부나 3부 리그로, 또 나머지는 아마추어 리그로 간다고 한다. 아카데미 출신으로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선수의 압박감, 그리고 최고를 키워내야 한다는 아카데미의 압박감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다. "아카데미 소속이라면 누구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여기에 익숙해 져야만 해요." 베르슬루트 씨의 말이다.

 

 

 해마다 새해 초가 되면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 소속 선수들은 아카데미 내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미리 통보받는다. 몇몇은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듣겠지만, 몇몇은 봄에 집에 가야할지도 모를 위험한 위치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한 16세 아약스 유스 선수가 8살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해 주었다. (참고로 아약스는 프로 계약을 맺지 않은 유스의 경우 기자들과 접촉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라, 기사에 이름을 싣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동의했다) "고작 아카데미 2년차였을 때였어요.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 짐 불확실한 위치다. 너가 남아도 좋은지 확신이 아직 없다.' 클럽에서는 저보고 좋은 기술을 보유했다고 했지만, 너무 소극적이라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했었죠."

 

 이 친구는 이제 자기 나이대에서 최고 기량을 갖춘 선수 중 하나다. 하지만 아약스 유스에 오래 머문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친구들이 집으로 가는 걸 너무나 많이 목격했다. "제 절친은 2년 전에 떠났습니다. 그에게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죠. 친구는 연락이 뜸해지자, 열받아 했어요. 그제서야 깨달았죠. 아, 걔와 나는 그냥 축구 친구였구나. 아약스에서는 진짜 친구를 만들 수 없구나, 하구요."

 

 이제 막 아약스와 프로 계약을 맺은 반 레인(Ricardo van Rhijn)은 네덜란드 19세 이하 대표팀 주장이기도 하다. 반 레인은 매년 벌어지는 떠남의 소동을 한결 부드럽게 언급했다. "때가 되면,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합니다. 정서적으로 힘들긴 하지만, 모든 소년들은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아약스 유스를 떠나야 할 때가 온다는 걸 다들 알고 있습니다."

 


 루이(Urvin Rooi)씨 아들 딜런은 자신이 속한 15세 그룹 훈련과정에 합류하기 위해 몇몇 소년들이 트라이아웃을 받았고, 이미 한 명이 합격 통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직장이나 마찬가지다. 당신을 교체할 지도 모를 후임을 내 옆자리 똑같은 책상에 앉혀 놓고 더 잘하는지 지켜 보는 거다.

 

 딜런의 아버지 루이씨는 네덜란드령 퀴라소(Curaçao)섬에서 집을 짓는 건축업에 종사중이고, 어머니는 심리치료사다. 이렇게 아약스 유스 선수들은 대개가 중산층 혹은 상위 중산 계급 출신이다. 네덜란드는 삶의 기준이 높고 문맹률이 1% 정도로 낮은 나라이고, 아약스 유스 역시 가난한 집안 출신은 사실상 없다. 인구 통계적인 면에 있어서는 미국에서 축구를 하는 계층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도 축구 선수들은 대부분 교외의 평균 이상 출신들이니까 말이다. 허나 네덜란드에서 유스 선수들은 대개 자신들의 부모 세대보다 낮은 교육 수준에 그치고 만다. 프로 축구 선수가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고등 교육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딜런 역시 처음에는 기사에 자기 이름을 싣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를 했으나, 나중에는 자기 이름을 꼭 실어달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자신의 의견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나,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누가 한 말인지 알 권리가 있다는 거다. 대화는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한 식당에서 진행되었다. 딜런네 이웃이기도 한 그 식당에는 딜런이 아약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자기 성찰적인 딜런의 태도는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대부분 미국 스포츠 선수들 과 너무 비교되는 터라 놀라 웟다) 딜런은 자기와 같이 7살 때부터 아약스 유스에 들어온 친구들 중 잘해야 두, 셋 정도가 프로 축구 선수가 될 거라 예상했다. "제가 거기 포함 안된다면 정말 최악일 거에요. 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왔어요. 학교도 가능한 많이 빠져 왔구요. 프로가 못되면 이렇게 보낸 모든 세월이 낭비였다고 느낄 거에요. 아마 엄청난 우울증에 빠질지도 모르죠."

 

 나는 이렇게 물었다. 아약스에서 배운 모든 것 - 집중력, 인내심, 압박감 하에서 성과를 만드는 능력 등이 나중에 무얼 하든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딜런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우리는 축구를 연습해 온 거지, 다른 건 전혀 모릅니다."

 


 아약스 유스 시스템에도 비판자들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주장한다. 아약스 1군 팀은 더 이상 유럽 최고 레벨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에레디비지에서 꾸준히 1위를 차지하지도 못한다고. 고로 아약스 유스 시스템은 더 이상 최고의 재능 양성소가 아니다 라고. 하지만 아약스 유스 출신이 모두 아약스로 돌아온다면 - 이탈리아에 있는 스네이더, 스페인에 있는 반더바르트(역주: 기사가 올해 5월에 나온 거라 레알 소속을 말했던 거고 지금은 다들 아시다시피 토트넘에 있죠), 잉글랜드에 있는 라이언 바벨, 헤이팅하, 데용 - 아약스는 세상 어느 팀과도 해볼만 하다. 보다 실질적인 비판은 아약스가 너무 돈벌이에 급급해 지나치게 냉정해졌다는 거다. 미국 유스 코치 출신 존 핵워스(John Hackworth)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느끼기에는 아약스가 스스로의 정신을 많이 상실했다고 봐요. 아약스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영웅들, 그들이 창조해낸 영웅들은 모두가 스타가 되어 다른 어디론가 떠나 버렸죠."

 

 나는 런던에서 풀럼 유스 아카데미를 방문에 휴 제닝스(Huw Jennings)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풀럼 10세 유스들 훈련을 지켜 보았는데 목소리가 우렁차고 피지컬적으로도 암스테르담 꼬마들보다 활기찬 모습이었다. "아약스 방식은 제가 보기에 다소 기계적입니다. 우리는 선수들이 경기를 통해 배우는 걸 보다 장려하지요. 현재의 아약스는 진짜 아약스의 모방일 뿐입니다."

 

 제닝스씨는 아약스가 선구자격이었던 이 방식은 유럽 탑클럽들이라면 모두가 수용했다고 말한다. 아주 어린 친구들을 스카우팅해 자신들의 아카데미에 집어 넣는 방식 말이다. 영국 저널리스트 크리스 그린(Chris Green)씨가 쓴 책 "모든 소년의 꿈(Every Boy’s Dream)"을 보면 잉글랜드에서만 어림잡아 10,000명의 유스 선수들이 클럽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클럽 입장에서 보면 설령 탑 클래스 축구 선수로 자라날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가능한 많은 유소년들을  끍어모으는 게 싸게 먹힌다는 거다.

 

 제닝스씨 휘하 풀럼 스카우터들에 의하면 영국 토착민들은 축구에 부적절한 이들이 대부분이며 애들은 방구석에 앉아 비디오 게임하는데 시간 보내는 게 전부라고 한다. 그래서 대신 런던 중심부에 사는 아프리카 출신, 동유럽 출신, 카리브해 출신들에 초점을 맞춘다는 거다.

 

 아약스와 마찬가지로 풀럼 역시 종종 재능을 팔아 버린다. 최근에는 20살 선수를 7 million 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시켰다. (역주: 다들 아시겠지만 스몰링 이야기입니다) 제닝스씨가 말한다. "재정적인 관점에 대해 말하는 건 불쾌한 일입니다. 하기 싫은 일이에요. 노예 무역과 뭐 크게 다를 바 없잖습니까."

 

 생각이 다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제닝스씨는 최근에 한 라이벌 클럽에서 "엘리트 5" 친선경기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 '5'는 5세 유스 선수를 뜻했다. 제닝스씨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 클럽에는 엘리트 5라는 게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임산부 축구 경기나 가지죠."

 


 월드 클래스 축구 선수가 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번째는 밤이고 낮이고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거다. 공원이든, 길거리든, 좁은 골목길이든 아무 땅바닥에서나 축구를 하다 잘하게 되면 정식 축구장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브라질 방식이다. 또한 남미 국가들, 중앙 아메리카 국가들, 아프리카 축구 국가들 방식이기도 하다. 야구로 치면 도미니카 공화국 방식에 해당된다. 어린이들은 모든 시간을 경기하는데 보내고, 자신들 방식으로 경기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아약스 방식이 있다. 과학적인 훈련, 디테일에 대한 강조, 별 의미없이 축구 경기를 많이 소화하기 보다 볼터치 기술을 향상시키는데 더 많은 시간보내기 등등.

 

 미국식 유스 시스템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이들은 지금 미국이 두 모델 중 어느 쪽도 따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미국은 분명 네덜란드보다 거대한 나라다. 미국의 유스 리그는 대부분이 지역 사회에 기반하며 프로들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 방식은 이미 아래에서부터 자연스레 성립된 터라 바꾸기가 어렵다. 차라리 최상층 레벨만 개혁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교외의 수많은 축구 교실들을 전부 바꾸고자 시도하는 것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미국식 축구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들은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최고의 재능들은 이 잘못된 시스템에서 구제되고 있으나, 이미 거기에 다년간 익숙해진 후다.

 


 MLS(Major League Soccer)의 근간을 이루는 팀 중 하나인 D.C. 유나이티드 유스 아카데미를 방문했을 때였다. - 인조 잔디에 라커품도 없는,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와는 판이한 환경이다. 팀은 최고의 유스 중 하나인 앤디 나자르(Andy Najar)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고 며칠 전 발표했다. 17세인 나자르는 10대 시절 부모와 함께 온두라스에서 이민온 친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D.C. 유나이티드 라는 프로팀에 합류한 거다. 팀에는 다행인 것이 이를 다룬 언론의 관심이 거의 없었다. 이는 미국 스포츠계에서 프로 축구가 가지는 낮은 위상을 반영하는 일일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NBA에 뛰어드는 문제의 경우 하도 많은 논란을 불어 일으켜 이제는 금지된 일이 되었다)

 

 나자르는 아주 뛰어난 기량을 가졌다 여겨져,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MLS 로스터에 합류할 것이다. 고등교육과 축구교육의 분리는 미국 축구계 높으신 분들의 공공연한 목표다. MLS는 1년에 수십명의 젊은 선수들과 계약을 맺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팀내 유스 아카데미 출신이며, 나머지는 대학에서 1,2년 뛰다 온 친구들이다. 팀은 계약맺은 친구들을 1군팀에 뛰게 하거나 기량 발전 프로그램에 굴리거나 한다. 이런 체제에서는 선수들의 대학 교육에 투자될 금액들은 사라지게 된다. MLS 유스 아카데미들은 이미 "뛰려면 돈내" 모델을 버리고 선수들을 키우는데 드는 모든 비용들을 감내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 축구 협회는 최고 레벨의 아마추어 축구 클럽들을 유스 아카데미화하고 있다. 이들 아카데미는 유럽식 모델을 따라 선수들을 훈련시킨다. 경기는 적게 소화하고 개인 기량 향상에 초점을 두는 거다. 문제는 아카데미 소속 코치들이 이전의 관성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비판하고 나서는 데 있다. 기존 코치들은 최고 레벨 선수들의 개인 기량 향상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당장의 경기에서 승리하고 싶어한다.

 


 적어도 미국 축구가 유스에 접근하는 방식은 야구나 농구처럼 생각없는 방식이 아니다. 미국식의 단점은 분명하다. 너무 많은 경기를 소화한는 반면, 훈련 시간은 너무 적다. 코치들이 10대 중반인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이닝을 소화시킨 탓에 투수들이 대부분 팔꿈치 수술을 겪는다는 걸 생각해 보라. 종목 간에 차이가 뭐냐고? 야구나 농구에서는 미국이 워낙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앞서 있기에 이딴 실수를 해도 수용폭이 넓다는 거다.

 

 축구에서는 아약스가 전세계 축구 시장의 기준점이다. 아주 어린 선수들을 데려와 잘 조련한 후 전세계 최고 클럽들에 수출한다. 반면 미국은 축구에서 여전히 주변 국가다. 지난 10년간 미국 출신 축구선수들은 더 큰 물을 찾아 유럽 빅클럽을 향해 갔다. 이들 대부분이 10대 때 계약을 맺은 것도 사실이다. 허나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팀내 서브에 머물렀으며, 월드컵 우승 후보에 걸맞는 스타 선수로 자라나지는 못했다.

 


 미국이 전세계 축구계에서 최고 위치에 올라가 월드컵 주요 우승 후보국가에 등극하는 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일까? 일단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 거 자체가 변화를 가져온다. 선수를 부모가 지원하는 게 아니라 프로 팀 소속이 되어서 훈련을 받게 된다면 클럽은 이들을 투자 대상으로 볼 것이고, 보다 전문적으로 피지컬과 축구 지능을 발전시켜려 할 것이다.

 

 허나 클럽에 의해 운영되는 유스라는 건 만인의 경쟁이며, 무자비한 축구 경제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 이런 요소는 미국의 감수성과 상충되는 면이 있다. 아약스가 만들어 최고 레벨에서 수용된 이 시스템은 미국인들에게 아동 운동 선수의 밀매와 같은 불편한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역주: 이적료, 즉 몸값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보일 수 있긴 하죠;;)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약스 스카우터 로날드 데 용(Ronald de Jong)씨가 선수 관찰하러 가는 길에 나를 초청했다. 그가 "2004"라 부르는 특별 관찰 대상을 보러 가는 길이라는 거다. 왜 '2004'냐고? 태어난 해가 2004년이란다. 데 용 씨는 5살 소년을 매달 가서 관찰하고 체크하고 있는 거다. 학교도 아직 안가본 애 아니냐고 물었다. 데 용씨는 자신도 터무니없다는 걸 안다는 투로 답했다. "예, 그럴 거에요, 아마 탁아소나 놀이방 정도 다니겠죠."

 

 아약스의 성공은 이처럼 잘 조직되고, 지원이 풍부한 축구 문화가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는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아마추어 축구 클럽이 있으며, 그런 클럽에는 수준높은 코치진이 있다. 지역내 최고 재능을 들을 위한 아카데미가 존재함은 물론이다.

 

 레이던(Leiden) 기차역에서 데 용씨를 만났다. 카트베이크(Katwijk)에 있는 퀵보이즈(Quick Boys)라는 클럽을 방문할 셈이었다. 널찍한 라커룸 복합 건물을 보유한 그 클럽은 튤립 사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구단주가 지원해 주었다 한다. 라커룸 건물 꼭대기에는 프라이빗 클럽이 있는데 거기 바에 들어가 보니 청어잡이 배를 본따 만든 나무 장식이 놓여져 있다.

 

 데 용씨는 아약스를 위해 일하기에 퀵보이즈 1군 팀 경기에 마음껏 들어갈 수 있었다. 아약스 스카우터 ID 카드만 보여주면 클럽의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경기 스케줄까지 체크할 수 있다. 경기장에 내려가니 과연 5살 짜리 경기가 있었다. 데 용씨는 한 어린이를 가리켜 소리쳤다. "저 녀석이에욧!"

 

 델라노 반 더 헤이덴(Délano van der Heyden)..이 어린이는 2004년 9월생이었다. 게다가 5세 기준으로 봐도 작아 보였다. 축구공이 이 아이 무릎까지 닿는다. 물어보니 실은 이 아이가 9살 팀에 맞서 경기를 하고 있었다 한다. 경기가 시작되자 데 용씨가 칭찬할만 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른 5살이라면 9살 형과 부딪히고는 울며 코치를 찾을 테지만 델라노는 아니었다. 형들과 충분히 경쟁할 뿐만 아니라 양발을 모두 사용해 슛을 날리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수비 등지고 볼을 받고는 돌아서서 골대까지 볼을 몰고 나가기까지 했다.

 

 데 용씨는 옆에서 흥분해 가면 경기 해설을 해댔다. 덩치 큰 형들이 파울로 델라노를 막으려 하자 델라노가 드리블로 영리하게 피해 나갔다. 데 용씨가 말한다. "보세욧! 피지컬로 저 아이를 막으려 덤벼 들어도 델라노는 항상 해법을 가지고 있어요. 언제나 미리 계획하고 움직이는 거죠." 다른 소년들의 집중력이 흐뜨려 지자 말한다. "델라노는 딴 데 쳐다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볼에 집중하고 있죠." 하프타임이 되자 델라노는 자기 팀 코치이자 아버지와 경기에 대해 의논을 한다. "저런 축구 대화를 보세요! 델라노가 얼마나 좋은 축구 가정 출신인지 알 수 있어요." 후반에 델라노가 수비 세 명을 제치고 골대 구석에 골을 집어 넣자 말한다. "이 나이에 저런 플레이! 믿을 수가 없네욧! 이런 선수는 생전 처음입니다!"

 

 이날 델라노 팀은 퀵보이즈팀에 원정온 거라고 한다. 델라노가 소속된 클럽은 보다 소규모 팀으로 데 용씨는 그 클럽이 델라노에게 충분치 않을까봐 걱정했다. 데 용씨는 델라노 아버지에게 다음 시즌에 더 큰 클럽으로 옮기라고 이미 얘기해 봤다고 한다. 만약 델라노 가족이 이를 원치 않는다면? "만약 그렇다면 레이커링크(Jan Olde Riekerink)씨에게 말해서 직접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라고 요청할 겁니다.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장인 레이커링크씨 말이라면 다들 듣거든요."

 

 만약 정말로 델라노가 월드 클래스가 될 천재 재능이라 해도, 아약스 1군 팀에서 뛸 수 있으려면 최소 12년은 걸릴 거다. 앞으로 2년 동안은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도 없다. 허나 데용씨가 델라노에게 관심가지는 일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델라노 정도 재능은 이처럼 시간을 투자해 관심 가질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잘하면 먼 훗날 첼시나 레알 마드리드, 혹은 유벤투스에 수백만 유로를 받고 이적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