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지만 무기력한 한국축구
한국선수들도 언뜻 보면 굉장히 빠르다. 그러나 공은 느리다. 더구나 패스가 쉽게 끊긴다.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공보다 빠를 수는 없다. 히딩크가 온 이후 한국축구도 이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팀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다. 사람의 빠르기는 그들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패스하는 ‘공의 속도’는 느리기 짝이 없다. 패스가 길고 그 경로를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단조롭다.
일본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재일동포 이국수씨는 “한국팀은 ‘생각의 속도’가 없다. 축구를 발로만 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한국축구는 빠르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지난해 컨페드컵 프랑스전을 보면 전혀 빠르지 않다. 공을 잡을 때나 잡기 전이나 선수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한국선수들을 일본에서 직접 지도해 봤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선수들보다 훨씬 뛰어난 점이 많다. 이젠 유소년선수 때부터 축구선수들을 골 넣는 기능인이 아니라 교양과 품위 그리고 생각의 능력을 함께 지닌 사람으로 키워야 한국축구가 발전할 것”이라고 말한다.
차범근 전월드컵대표팀 감독도 지적한다.
“한국선수들의 기술은 매우 정적으로 훈련돼 있다. 상대를 제치고 페인팅을 하고 드리블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수준 높은 축구에서는 속도가 없이는 개인기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공을 향해 두세 명 혹은 서너 명씩 빠르게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공을 가진 선수가 개인기를 부린다면 부상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다. 실제로 원터치 투터치 이상 공을 소유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상황에서의 정확성이 더욱 중요하다. 거기다 한국에서 개인기가 좋다는 선수들의 가장 큰 단점은 수비임무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류선수들은 공을 죽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공은 ‘죽은 돌멩이’가 아니고 생물이다. 그래서 잘하는 선수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공이 펄펄 살아 구르도록’ 놔둔다. 그리고 원터치 투터치로 툭툭 ‘공의 길’만 마음먹은 대로 바꿔준다. 한국선수들은 차감독 말마따나 본능적으로 ‘정적’이다. 가만히 서서 받은 뒤 또 가만히 서 있는 동료에게 패스한다. 그리고 대부분 공을 일단 죽인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패스한다. 그런 경우 십중팔구 상대에게 공을 뺏긴다. 공을 죽여놓고 풀어가느냐, 아니면 살려놓고 플레이하느냐는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공을 생물처럼 다루려면 그만큼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
‘생각의 속도’에 대해 마라도나가 재미있는 지적을 했다. 마라도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럽축구는 사람이 공을 지배하고 있는데 반해 남미축구는 사람과 공이 대등하다. 유럽축구에서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공은 그 게임의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남미축구에서는 이기기 위한 전략은 있어도 플레이 스타일에는 제한이 없다. 공을 어떻게 다루든 그것은 선수 마음대로이며 득점만 올리면 무엇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 유럽축구에서 게임은 공을 자기 발 밑에 놓았을 때부터 시작된다. 여러가지 플레이는 자기가 공을 컨트롤할 수 있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선수들은 공을 가장 다루기 쉬운 자신의 발 밑에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남미에서 게임의 흐름은 공을 ‘키핑’하고 있는 선수의 형편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둘러싸고 움직이는 전체로써 형성된다. 그러므로 공이 떠 있든 발 밑에 있든 패스할 때 패스해야 하며 슛을 때릴 때는 반드시 슛을 때려야만 한다.”
물론 요즘엔 유럽선수들도 마라도나의 말처럼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만큼 유럽과 남미의 축구 스타일은 점점 더 닮은 꼴이 돼가고 있다. 마라도나가 뛰던 1980년대와 비교할 때 현대축구는 그만큼 ‘생각의 속도’에서 빨라졌다.
선진축구를 온몸으로 경험한 한국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활약하고 있는 안정환(AC페루지아)의 말을 들어보자.
“이탈리아 세리에A 경기는 우선 엄청나게 빠르다. 쉬는 선수가 하나도 없다. 볼이 살아 움직이면서 물결처럼 움직이는 경기 흐름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몸싸움을 하지 않고 수비에 가담하지 않으면 선수로 취급하지 않는다. 항상 준비된 상태(생각을 미리 하고 있어야)에서 미리 방향전환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볼이 안 온다. 상대 수비수를 제친 것 같았는데 어느새 발이 내 앞에 와 있고 패스가 제대로 됐다 싶은데 상대에게 걸릴 때가 많다.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도 웬만해선 치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개인기보다는 조직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적절한 파울로 상대의 공격흐름을 끊는 것도 기술이다.
연습경기 한 게임이 한국에서 프로 3경기를 뛴 것 같았다. 한 경기에 몸무게가 3∼4㎏ 이상 빠졌다. 이탈리아에선 선수가 최고다. 그만큼 책임도 크다. 한국에서는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한국선수들은 감독을 비롯해 주위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데 그래서는 발전이 없다. 한국축구는 템포가 느리고 유기적인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 체력도 더 길러야 하고 특히 생각하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한 축구기자도 “안정환은 이탈리아 축구에 더 적응해야 한다. 테크닉은 갖추었으나 이탈리아식의 밀고 당기는 스타일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의 나카타도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엄청나게 빠른 이탈리아 축구에 적응하고 완전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되기 위해서는 팀전술을 제대로 익혀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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