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브뤼셀(벨기에)] 김정용 기자= "뱅상 콩파니(맨체스터시티)와 에덴 아자르(첼시)같은 선수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어도 지금처럼 성장했을 재목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선수들이다."
세계 최고의 황금세대를 지닌 벨기에의 유소년 담당자를 인터뷰한다면, 누구나 콩파니와 아자르를 기른 비결을 묻기 마련이다. 그러나 벨기에 플레미쉬(네덜란드어권) 지역 기술분과 책임자인 봅 브루와이즈는 콩파니와 아자르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브루와이즈가 예로 든 벨기에 유소년 교육의 수혜자는 드리스 메르텐스(나폴리)였다. 메르텐스는 16세 당시 또래에 비해 왜소했기 때문에 신체 조건을 중시하는 나라에선 도태됐을 수도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벨기에의 세분화된 유소년 관리 속에서 순조롭게 성장했고, '2014 브라질월드컵' 8강 진출의 주역이 됐다.
벨기에 유소년 축구의 발달 비결을 들어보면 한국인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유소년 선수를 분석하는 6가지 기준 중 한국에서 중시하는 기술이나 신체 조건은 하나도 없다. 이웃 나라의 좋은 점을 도입할 때 망설임이 없는 태도도 생소하다. 6일(현지시간) 브루와이즈와 인터뷰를 했다. 골키퍼 출신인 그는 1999년부터 네덜란드축구협회(URBSFA)에서 일한 유소년 육성 전문가다. 2007 U-17월드컵 당시 코치로서 한국을 찾기도 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유소년 중 재능 있는 선수를 찾는 건 누구의 역할인가?
감독과 코치, 유소년 육성 관계자뿐 아니라 200명 넘는 스카우트가 활동하고 있다. 대표팀은 U-14 때부터 선수를 찾기 시작한다. 14세 이전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각 지역에서 성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14세 이후로는 유망주들을 소집해 국가 차원의 훈련과 경기를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소집하는 목적은 벨기에 대표팀에서 뛰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가르치고, 벨기에가 추구하는 기술적인 스타일을 익히기 위해서다.
-선수 육성에 가장 중요한 시점은 언제인가?
14세다. 선수들 중엔 일찍 성숙하는 선수도 있고 10대 후반까지 키가 크는 선수도 있다. 어렸을 땐 빨리 성숙한 선수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재능은 있는데 성장 속도가 느린 아이들은 발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린 각 클럽들에 U-14 때는 성장 속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일찍 성숙한 선수들, 보통 속도로 성숙한 선수들, 또래에 비해 느리게 성숙하는 선수로 3개 그룹을 구성한 다음 성장속도별로 같은 그룹끼리 리그를 치르게 한다. 벨기에 청소년대표팀도 이 점을 고려했다. 'U-17 대표팀'과 'U-17 미래의 팀'을 구분해서 운영한다. '미래의 팀'은 지금 신체 조건이 좋지 않지만 장차 더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로 구성한다.
-선수의 재능을 어떤 식으로 파악하나?
우리가 주목하는 건 재능 있는 선수의 6가지 특징이다. ① 위닝 멘털리티(이긴다는 자세) ② 성격 ③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가 ④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는가 ⑤ 가속할 때의 폭발력, ⑥ 신체 지배력이다. 14세 때 기술이 좋다는 건 헤딩이나 롱킥을 열심히 연습했다는 뜻이 아니라,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자기 몸을 잘 다룰 줄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신적 능력들과 함께 신체 지배력이 중요하다. 근력은 성장이 끝난 뒤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
-유소년 선수를 교육할 때의 방침은 ?
기본 철학은 '선수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는 선수 자신이다'라는 것이다. 스스로 의사결정하게 만들어야지, 코치가 옆에서 옳은 길을 가르쳐주면 안 된다. 11대11이 아닌 5대5나 8대8 경기를 권장하는 것도 더 자주 공을 만지며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라는 뜻이다. 만약 패스가 부족한 선수가 보인다면, "패스에 신경 써라"라고 말하는 대신 5분 정도 패스 훈련을 하게 해 자연스럽게 패스 빈도를 늘리는 편이 낫다. 또한 기본적인 교육 방침은 '드리블 먼저, 그 다음 패스'다. 기본은 드리블이다. 1대1 대결에서 한 명을 뚫을 수 있게 되면 그때 고개를 들어 동료를 확인할 여유가 생기는 법이다.
-유망주 육성을 특별히 신경 쓰게 된 계기는?
1999~2000년경의 일이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했고, 네덜란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 모습을 보고 자극 받았다. 벨기에는 두 나라 사이에 있고 그들의 언어도 쓰기 때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통적인 벨기에 축구는 조직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기술적인 선수 한두 명을 활용해 빠르게 역습하는 축구인데 2000년 즈음 세계 축구 흐름이 변하고 있었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의 필요성을 느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유소년 축구를 강화했나?
네덜란드의 분석력과 프랑스의 기술 사이에서 장점만 섞으려 했다. 벨기에는 전통적으로 4-4-2나 3-5-2를 써 왔지만 4-3-3을 쓸 때 선수들이 더 많은 드리블을 하게 된다는 걸 알고 유소년 축구를 4-3-3 위주로 개편했다. 어린 선수들은 5대5, 조금 더 성장하면 8대8 축구를 하게 했다.
-축구협회의 방침을 각 클럽들이 따르게 만든 방법은 무엇인가?
처음 철학을 세우고 계획을 짤 때부터 주요 구단의 유소년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하며 함께 만들었다. 클럽들과의 협업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다. 그들이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시킬 필요 없이 우리의 유소년 교육 방침을 따르고 있다. 청소년 대표팀, 지도자 교육 과정, 각 구단별 유소년 팀에서 모두 같은 시각을 공유했다. 그 기간이 15년 정도였다. 15년은 7, 8세가 22, 23세로 성장하는 기간이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야 유소년 정책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10년이다. 벨기에엔 10년 넘게 유소년 축구계에서 일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지속성 있게 비전을 추구할 수 있었다. 철학을 세우는 것보다 오래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유망주들이 프랑스나 네덜란드로 유출되고 있다
아자르가 성장한 팀은 릴이고, 대표급 선수들이 많이 이적하는 곳은 암스테르담이다. 모두 벨기에와 아주 가깝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곳이라 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릴과 아약스의 좋은 유소년 육성 시스템 속에서 선수가 컸으니 우릴 도와준 셈 아닌가? 다만 최근엔 먼 잉글랜드에 일찌감치 가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계속 이런 분위기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황금 세대를 가진 지금, 벨기에의 고민은?
지금 '황금세대'로 불리는 A팀 멤버들은 16~19세 때부터 A대표팀 훈련에 참가했다. 콩파니를 예로 들자면, 18세 때 대표팀에 들어왔지만 지금처럼 잘 하는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5년 정도 걸렸다. 그 5년 동안 콩파니의 실수 때문에 진 경기도 있었지만, 우린 계속 기회를 줬다. 반면 요즘 유소년 선수들은 황금 세대 선배들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A매표팀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황금 세대' 다음엔 '잊혀진 세대'가 오기 쉽다. 다음 세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벨기에 축구의 큰 숙제다. 스페인이 세대 교체를 안 해서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하지 않았나.
사진= 풋볼리스트, 봅 브루와이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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