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축구팬들의 소중한 소통 공간이자 쉼터인 '사커월드'에 아주 잠시 몸을 담고 있을 무렵에 올렸던 글이다.
사실 이 글은 1년 전 술에 아주 취한 상태로 올린 것인데,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내 인생 최고의 축구 경기'는 바로 2년 전 그 경기로 남아 있기에, 그 제목 그대로 여기에 다시 한 번 올려보는 것이다. 과연 내년에는 '내 인생 최고의 축구 경기'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나도 궁금하기만 하다.......
내가 응원하는 축구 팀은 이 나라를 대표한다는 그 잘난 국가대표 팀도 아니고, 서유럽의 명문 클럽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 최고의 축구 클럽들이 모인 K리그에 소속된 팀도 아니라, 그보다도 아래에 있다고 하는 내셔널리그 소속의 부산 교통 공사라는 팀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일 년 전, 그러니깐 2010년 11월 2일 오후 7시에 나는 부산 구덕경기장에서 벌어진 부산 교통 공사 대 안산 할렐루야 팀의 경기를 보러 갔다. 나랑 같이 이 경기를 보러 간 두 사람은 내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무렵에 아주 절친했던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 두 명과 나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이 나라에 '아주 잠시' 몰아닥친 축구 열풍에 휩싸이기라도 하듯이 국내 축구 리그 '현장'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우리들 세 명은 서울에서부터 대전, 포항, 부산, 광양 등 국내 그 어디든지 이 나라 곳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당시 우리들이 가진 유일한 자산인 '젊음의 열정'을 축구에 거의 쏟아붓다시피 하면서 98년 가을 이후의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그렇게 해도 못다 한 축구에 대한 갈증을 아쉬워하면서 우리들 세 명은 각기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야만 했었다. 군대로, 미국으로, 프랑스로.... 어쩌면 그게 우리들이 함께할 수 있었던 젊음의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씁쓸한 마음을 안은 채 말이다.
처음엔 아주 짧은 헤어짐으로 알았지만 그게 하루 이틀 쌓이다 보니 결국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허우적댄 우리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때론 기쁘기도 하고, 때론 슬프기도 하고, 때론 괴롭기도 하고, 더러는 답답하기도 하고, 자주는 힘겹기도 했던 하루하루를 영위하면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잊혀져 가는 시간들이 마냥 흘러갔다. 무심한 시간, 시간들과 함께.....
처음엔 하루, 또 이틀, 그리고 점점 더 저 친구들에 대한 생각이 아주 드물게만 뇌리에 어렴풋이 떠오르던 그 어느 날, 어쩌면 우리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날들이 결코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던 작년 이맘때 전혀 뜻밖에도 우리들 세 명이 다시 만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것도 내가 잠시 '피난처'처럼 여기고 내려왔던 이곳 부산에서 말이다.
자, 그런 저런 중간 과정은 더 써 갈길 필요가 없을 거 같으니까, 다 생략하겠다.
98년 이후 근 12년 만에 다시 만난 우리들이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해도 축구팬으로서 충분히 행복했을 시간이었을 법한데, 그날 우리가 함께했던 경기는 축구가 안겨줄 수 있는 최고의 희열을, 최고의 감동을, 드라마틱한 역전 드라마의 진수를 안겨주었다. 마치 우리들 세 명의 재회를 축하해 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작년 그날은 무척 추운 날씨 탓인지 구덕경기장에는 평소와 달리 300명 안팎에 불과한 아주 적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나마도 늘 그랬듯이 그들 대부분은 부산 교통 공사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부산 교통 공사 팀의 헌신적인 응원으로 유명한 영국인 강사 찰리를 비롯한 몇몇 서포터즈들을 제외한다면 내 일행들처럼 '순수하게' 축구 때문에 부산 교통 공사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 따라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관중석 곳곳에서 적지 않게 보였다는 게 조금 눈길을 끌게 할 뿐이었다.
작년 11월을 덮친 때아닌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경기는 시작이 되었고, 난 내 친구들과 함께 닭과 족발을 안주 삼아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경기를 봤다. 운동장을 주시하는 틈틈이 술을 마시면서, 간간이 이야기도 나누며 보내는 시간은 편안하면서도 무척 흥에 겹고 즐거웠다. 내 주위로 해서 터져 나오는 부르젤라 소리와 북과 여러 가지 타격 기구들이 뿜어내는 응원 소리들이 연신 고막을 지지고 들어오기도 했었고, 멀찌막이 떨어진 자리에서 안산 할렐루야를 응원하는 몇몇 일행들이 열심히 두들겨 대는 북소리와 구호 소리가 꽤나 내 귀를 어지럽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잡다한 소음'들도 그날 내 친구들과의 가슴 뭉클한 재회의 기쁨에 도취된 내겐 그저 아름다운 풍경화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는 뒷 배경일 뿐이었다.
전반전은 0 대 0.. 경기 자체로만 보자면 상당히 지루한 양상을 띠기도 했던 졸전이었다. 그런 경기가 펼쳐지면 아주 냉담한 반응을 보여주던 구덕운동장의 평소 관중석 분위기와는 달리 이날은 꽤나 뜨거운 열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는 점이 상당히 이채롭기는 했었다. 어쩌면 그건 내 친구들과의 재회에 도취된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의 휴식 시간 뒤에 치러진 후반전. 여전히 답답한 경기 흐름을 보여 주던 가운데 후반 중반 정도 무렵에 안산 할렐루야 팀의 선수 하나가 코너킥 상황에서 혼전 중에 흘러나온 공을 차 넣은 게 그대로 골로 연결이 되었다.
0 대 1...
부산 교통 공사는 이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만 남은 한 경기의 결과에 따라서 4강이 겨루는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승리는커녕 이대로 가다가는 무승부조차 거두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자 부산의 승리를 바라는 관중들의 애끓는 듯한 함성 소리가 조금씩 커지면서 경기는 더욱더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었다. 간간이 안산 할렐루야 팀의 반격이 있긴 했지만 경기는 시종 일관 부산의 일방적인 지배 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드려도 두드려도 좀처럼 안산의 골문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다 두 번에 걸쳐서 골대를 맞히는 최악의 불운까지 겹치면서 후반전도 40분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자연히 부산 팀에게도 패배의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었다.
그렇게 맞이한 후반 40분 무렵 부산의 코너킥 상황에서 페널티박스 외곽에 있던 3번 박준홍의 머리에 맞은 공이 약간의 포물선을 그린 뒤에 기어코 골네트를 갈랐다. 그렇게 해서 극적으로 이룬 1 대 1 동점.
이 골이 터지자 관중석에서는 박수 갈채와 함께 뜨거운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나와 내 친구들도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남은 시간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역전승이라는 걸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누구나 예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기쁨이란 것이 조금은 깊이가 없는 헛된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더욱 불붙기 시작한 부산의 파상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열리지 않는 안산 할렐루야의 골문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가운데 어느덧 추가 시간마저 끝이 날 무렵에 이르렀다. 그 시간들 속에서도 부산 팀의 파상적인 공세가 줄기차게 이어졌지만 아쉽게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꾸만 마침표를 찍지 못한 채 무위로 돌아서야만 했었다.
거의 처절하리만큼 골에 대한 집념으로 그라운드를 불사르는 부산 교통공사 선수들의 투혼이 빛을 발했지만, 골대 안으로 그 어떤 공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듯이 마지막 한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안산 팀의 필사적인 저항 앞에서 결국 경기 종료가 눈앞에 다가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눈물겨운 몸부림을 쳐도 결국 열리지 않는 골문을 보면서, 주심의 종료 휘슬 소리만 남겨놓았다는 절망감으로 가득한 '침묵'이 관중석을 뒤덮기 시작했다. 붙들어 맬 수 없는 시간을 탓하면서 관중석 가득 절망으로 질식이 될 무렵, 바로 이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주심이 입으로 휘슬을 가져가려는 동작을 취하려고 할 바로 그때, 허리 진영에서 시작된 역습이 아크 서클 좌측을 파고들던 12번 장지수에게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휘슬을 입에 문 주심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눈으로 파고들었다. 이대로 끝이 나는가 하는 참담한 생각에서 눈시울마저 붉어지려고 할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주심이 휘슬을 불려고 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페널티박스 좌측까지 파고든 장지수가 회심의 일격처럼 내갈긴 것이 그대로 안산 할렐루야의 좌측 골네트를 갈랐던 것이다.
2 대 1. 부산 교통 공사의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이 골 하나로 해서 경기장은 아예 열광의 도가니로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300여 명이라는 아주 초라한 인원에 불과했지만 이 기적과도 같은 역전승에 도취된 관중들이 거의 광란의 열기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이다. 내 뒤에 있던 외국인 찰리를 비롯한 열혈 서포터즈들은 서로를 격정적으로 포옹하면서 환호성을 내지르기 바빴고, 내 일행들도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들떠 마구 포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당시 나는,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 어떤 뜨거운 열기에 못 이긴 나머지 그저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채 하늘을 보면서 한참 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명 소리를 계속해서 내질렀다. 내 친구 두 명은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펄쩍펄쩍 뛰면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내 주위에 있던 몇몇 사람들 중에서는 너무나 흥분된 나머지 몇 계단 아래로까지 미끄러지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부둥켜 안고 절규하다가 그 상태 그대로 좌석 아래로 나동그라지기도 하는 등 아찔한 상황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광경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박수와 환호성과 뜨거운 함성 소리를 밤하늘로 가득 뿜어 올리면서 관중석을 뜨겁게 진동시키기 바빴었다.
장지수의 슈팅이 골로 연결되었을 무렵, 장내 아나운서는 "골"이라는 말을 거의 울부짖듯이 내뱉은 뒤에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야 비로소 "이 드라마틱한 승리를 안겨준 부산 교통 공사 선수들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보내줍시다"라는 말을 거의 흐느끼다시피 하면서 내뱉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이 순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었다.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터져 나온 뒤에 관중석에서 펼쳐진 상황을 어쭙잖은 내 표현력으로 제대로 그려낼 수 없다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이 당시 찰리를 비롯한 부산의 몇몇 서포터즈들은 거의 광기에 젖은 상태로 그라운드에 진입을 했고, 부산 교통공사 선수들이 그들에게 뜨거운 포옹으로 화답을 하는 감동의 장면이 이어지기도 했었다. 이 격정적인 드라마는 부산 선수들이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에 한참 동안 트랙 위에 서서 답을 하고서 경기장을 떠난 뒤에도 그칠 줄 몰랐다. 선수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관중석에서는 흥분된 관중들의 뜨거운 환호성으로 계속해서 아수라장이 이어졌을 정도였다.
나와 내 친구들도 이런 열광적인 분위기에 흠뻑 취한 나머지 운동장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서, 관중석을 흡사 '광란의 도가니'로 만드는 장면을 계속해서 연출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흥분과 광기로 가득한 시간이 몇십 분이나 이어진 뒤에야 비로소 하나둘씩 관중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들이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고 계속해서 술자리를 이어가자는 소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리기도 했었다.
그건 우리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감동을 그저 가슴에 묻어둔 채 그냥 헤어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어진 술자리에서도 한참 동안을 이 극적인 경기 결과에 들뜬 마음을 그대로 이어갔을 정도였다. 그때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도 격정적인 마음만큼이나 가슴 벅찼었다.
저 친구들은 함께 공유하지 못했지만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부산 아이콘즈(아이파크의 전신!)로 바뀐 뒤에 맞이한 부산 구덕운동장의 첫 경기에서 나 혼자 외롭게 펼쳐야만 했던 "부산 대우 로얄즈는 영원히 내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문구에 대한 이야기나, 그런 내 옆에서 "대우 로얄즈와 함께한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라는 글귀가 쓰여진 종이를 펼쳐든 채 눈물 짓던 나이 지긋한 어느 축구팬의 이야기도 결코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내 친구들이 짓던 그 슬픈 표정도 그날 경기의 아스라한 뒷 배경으로는 안성맞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년 전 벌어진 그 경기는 아직도 내 가슴에 벅찬 감동과 희열로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짧은 내 인생에서 지켜본 축구 경기 중에서 가장 멋진 경기로, 가장 감동적인 경기로, 가장 가슴 벅찬 희열을 안겨준 경기로 남아 있다. 앞으로 어떤 경기가 그날의 감동을 넘어서는 뜨거운 희열을 안겨줄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그날의 경기는 내게 '최고의 경기'로 기억될 것이다. 축구팬으로서 이런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게 지금도 나는 가슴 뿌듯하기만 하다.
축구팬들이라면 이런 경험을 한 나를 누구라도 부러워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상, 술에 취해서 적어 본 '작년 오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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