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다음스포츠 칼럼 '김세훈의 창과 방패'에 실린 글을 제가 그대로 긁어 것입니다. 원본 글은 다음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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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의 창과 방패] 너무 강렬해 잊지 못할 비엘사 감독과의 첫 만남@@
코칭스태프는 훈련 30분 전 왔다. 그리고는 콘을 놓고 골대를 옮기는 등 훈련준비를 미리 완벽하게 마쳤다. 훈련도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한 치 흐트러짐도, 한 번 느슨함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훈련은 상대 수비수를 세워놓고 진행됐다. 훈련 도중 감독이 오라는 손짓을 하면 모든 스태프는 감독에게 한걸음에 달려갔다. 마치 100m 전력달리기를 하듯 빠르게 말이다.
첫 인상은 짧지만 강렬했다. 그가 왜 세계적인 명장인지 훈련만, 그것도 딱 한번 보고 알았다.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 훈련을 지휘하는 과정 모두 자로 잰 듯 정확했다. 완벽한 훈련 상태와 훈련 내용에 선수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선수들 눈은 맹수처럼 이글거렸고 훈련 도중 웃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집중도가 높았다.
2008년 1월28일. 파주에서 벌어진 모습이다. 당시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의 데뷔전을 앞둔 시점. 상대는 칠레였다. 우리 국가대표팀 훈련을 지켜본 필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칠레 감독이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다. 세계적인 명장이다. 그는 훈련은 어떻게 시킬까. 다시 보기 힘든 훈련인데 한번 봐야겠다.'
그래서 일찌감치 운동장에 나와 칠레를 기다렸다. 세계적인 명장이 훈련을 직접 지도하는 걸 본다는 기대감에 마음도 조금 들떠있었다.
훈련 전부터 신선한 충격이었다. 훈련 시작 30분전 작은 승합차가 들어왔다. 코칭 스태프가 탄 차였다. 거기에 4명이 내렸다. 그러더니 훈련용 콘, 볼 등 훈련도구를 신속하게 꺼내들고는 무슨 종이를 나눠 보더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콘을 꺼내서 그라운드 한쪽에 일정한 배열로 놓았다. 3m 길이 고정용 기둥도 4-4-2 포메이션에 맞게 세워놨다. 공과 물 등도 여기저기 골고루 배치했다. 훈련에 앞서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끝. 보통 한국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장비 담당자가 동시에 온다. 그래서 선수들이 축구화 끈을 묶고 몸을 풀 때 그 때 코치진과 장비 담당자는 콘을 놓고 공을 풀어놓는 등 훈련준비를 한다. 칠레 준비 상황을 지켜본 한 축구인은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훈련준비가 완비된 운동장을 봤을 때 느낌을 생각해보라"면서 "훈련을 더 열심히 더 집중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30분 후 선수들이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그들의 표정은 무척 진지해 보였다. 웃는 선수도, 동료들을 툭툭 치면서 장난하는 선수도 없었다. 그라운드 두 곳에 훈련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상태. 훈련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듯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1시간 30분 훈련. 훈련 장면 중 필자를 놀래킨 것은 훈련 내용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훈련을 지켜보고 훈련을 돕는 스태프의 자세였다. 스태프들은 장난치거나 딴 짓을 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운동장 여기저기에서 진행되는 훈련을 지켜봤고 뭔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신속하게 처리했다. 그 때 흥미로운 장면이 벌어졌다. 훈련을 지켜보던 비엘사 감독이 한 코칭스태프를 향해 손짓을 했다. 순간 두명의 스태프가 비엘사 감독에게 달려갔다. 그들이 뛰어가는 모습은 흡사 단거리 육상 선수를 방불케 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얼마나 빨리 뛰어가던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코칭스태프를 휘어잡은 비엘사 감독의 장악력이 생각났고 그런 모습을 보고 감독의 힘을 느낄 선수들의 심정도 가늠해봤다. 비엘사 감독의 지시를 받은 코칭스태프 2명은 다시 한걸음으로 달음질해와 뭔가를 들고 운동장 구석으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몸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위한 다른 훈련을 준비하라는 지시. 그들은 즉석에서 내려진 감독 주문을 쏜살같이 수행했다.
훈련은 세트피스 공격, 포메이션의 밸런스 훈련, 슈팅 훈련이 주를 이뤘다. 3가지 훈련에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반드시 상대 선수를 두고 훈련을 했다는 점이다. 상대 수비수 없이 칠레 선수들이 모두 공격수가 돼서 훈련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세트피스 훈련에는 두 종류 수비수가 있었다. 하나는 물론 인간 수비수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3m 짜리 기둥이었다. 비엘사 감독은 프리킥에 이은 슈팅훈련을 하면서 인간 수비수뿐만 아니라 기둥까지 가상 수비수로 세웠다. 그러면서 시시때때로 지시를 내렸다. 첫 번째 기둥과 두 번째 기둥 사이로 프리킥을 해라, 세 개 기둥을 모두 피해 오른쪽으로 볼을 올려라는 식으로 말이다. 비엘사 감독은 세트피스에서 엄청난 세밀함을 요구하고 있었다.
슈팅훈련도 그랬다. 반드시 공격수 숫자보다 많은 수비수를 놓고 진행됐다. 실전과 비슷한 상황이다. 경기 전 골 감각을 끌어올려야한다며 공격수 5,6명만 놓고 수비수 없이 슈팅훈련을 한 우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공격수든, 수비수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슈팅훈련을 한 시점도 의미가 깊었다. 우리는 보통 훈련이 다 끝난 뒤 슈팅훈련을 하는 게 다반사. 그러나 비엘사 감독은 초반에 슈팅훈련을 했다. 축구의 꽃은 역시 골. 힘이 있고 집중도가 높은 훈련 초반 진행된 슈팅훈련에서 보여준 칠레 선수들의 골 결정력이 높은 것은 당연했다.
밸런스 훈련에서도 동일한 수의 상대 선수가 있었다. 4-4-2 포메이션을 놓고 밸런스 훈련을 할 때 수비 쪽 선수들이 부족했다. 그 때 가상의 수비수 역할을 한 게 1.5m 안팎 높이의 기둥이었다. 수비수가 부족한 곳에는 기둥을 놓고 밸런스 훈련을 한 것이다. 당초 선수를 적게 데려온 게 아니었다. 다만 다른 선수들이 옆쪽 다른 운동장에서 다른 훈련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밸런스 훈련에서 부족한 선수를 기둥으로 대체한 것뿐이다. 물론 그 기둥도 훈련 시작 전부터 코칭스태프가 미리 와서 세워놓은 것이었다.
비엘사 감독이 지휘하는 훈련은 시작 전부터 끝날 때까지 일사불란했고 톱니바퀴가 맞아 들어가 듯 치밀하고 오차가 없었다. 1시간 30분 동안 훈련을 지켜본 필자는 세계적인 명장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지휘하는 훈련에 이어 6년 만에 받는 엇비슷한 충격. 칠레는 당시 20대 초반 선수들로 구성됐다. 비엘사 감독이 부임한 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대비해 젊은 선수들로 팀을 새로 꾸린 것이었다. 그런 칠레는 며칠 후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훈련 장면을 본 필자는 한국이 패한 게 당연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저런 감독,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으로 모셔오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과 칠레에 대한 부러움도 생겼다. 그리고 2년 반 후 칠레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다시 16강. 그리고 최종 성적은 10위. 1962년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른 이 후 최고 성적이다 그 때 감독, 물론 비엘사였다.
비엘사 감독은 남아공월드컵 직후 여러 국가대표팀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다. 일본도 그를 무척 원했다. 그러나 그는 2011년 2월 칠레 지휘봉을 내려놓고 그해 7월 지금 스페인 애틀레틱 빌바오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비엘사가 이끄는 빌바오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빌바오의 이번 시즌 프리메라리가 순위는 6위. 지난해 최종 순위와 같다. 그러면서도 빌바오는 Copa Del Rey와 유로파리그 결승에 올라 있다. Copa Del Rey 결승에서는 바르셀로나와 맞붙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은 상승세에 이어 도달한 유로파리그 결승에서는 애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싸운다. Copa Del Rey에서 우승하면 빌바오는 1983~1984시즌 이후 19년 만에 정상에 오른다. 유로파리그에서는 역대로 우승 없이 준우승만 한번 했는데 그 준우승도 1976~1977년, 오래전 일이다.
어제 과르디올라 감독이 떠난 바르셀로나는 수석코치 빌라노바를 차기 감독으로 선임했다. 비엘사 감독도 물망에 올랐다. 물론 바르셀로나가 비엘사에게 영입제의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비엘사 감독은 한 번 부임하면 최소한 3,4년 동안 팀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오퍼가 왔어도 고민을 많이 했겠고 과거 경력을 감안하면 바르셀로나로 가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다. 어쨌든 비엘사 감독이 이끄는 빌바오와 수장을 바꾼 바르셀로나가 5월26일 Copa Del Rey 결승전을 치른다. 빌바오가 바르셀로나를 꺾는다면, 또 빌바오가 유로파 리그 정상에 오른다면, 물론 둘 다 실패한다고 해도 이번 시즌 빌바오가 보여준 눈부신 활약은 비엘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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