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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디언 칼럼] 박지성 : 진정한 선수들의 선수(가디언칼럼)

작 형 2010. 4. 23. 16:36

 






[가디언 칼럼] 박지성 : 진정한 선수들의 선수





Park Ji-sung
                           Park Ji-sung: the true player's player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뛰고 있는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박지성은 챔피언스리그결승전 5월 모스크바의 루츠니키 스타디움의 드레싱룸에서 정말 큰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팀 동료들은 첼시와의 결승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정장을 입고 있었다.

8강, 4강에서 모두 풀타임 출전 했음에도, 박지성은 제외되었다. 그리고 벤치에도 앉지 못했다. 그리고 알렉스 퍼거슨 경은 그 결정이 자신의 감독 생활 중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첼시의 감독 아브람 그랜트는 박지성 본인보단 덜 놀란 듯 했다.

"패스를 잘 하는 바르셀로나와의 4강전에선, 알렉스 경은 열심히 뛰어다닐 선수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첼시와의 경기에선 4-4-2 전술을 사용하며, 조금 다른 모습을 원했죠."

한국 언론은 아직도 그 날을 '모스크바의 악몽'으로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결승 직후 박지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팀이 승리해서 매우 기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존경할만한 품성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박지성의 태도가 퍼거슨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유나이티드엔 자존심 강한 스타 플레이어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퍼거슨은 박지성이 자신의 결정을 받아들여줄 것이라 느꼈을 것이다.

박지성은 분명 자신을 낮추는 선수이다. 2005년 거스 히딩크의 PSV를 떠나 온 뒤로, 2번의 프리미어 리그 타이틀과 어쩌면 이제 곧 2번째 리그 컵 메달을 따낼지도 모르는 이 선수에 대한 언급은 다 긁어모아도 충분치 않다.

그는 말수가 적다. 물론 영어 실력은 상당히 늘었다. 하지만 그는 약한 선수는 아니다. 전 에이전트였던 FS와 히딩크를 설득시키고 PSV에서 이적해왔다. 뿐만 아니라, 히딩크를 따라 PSV에 온 이후 무릎 부상으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에도, 자신의 실력을 결국 입증하였다.

모스크바에서 유나이티드 주장을 맡았던 리오 퍼디난드는 박지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 박지성의 고국에서의 별명은 미키 마우스 또는 고구마라고 한다. 한국에선 수수한 사람들에게 잘 붙는 별명이다. 하지만 팀 내에서 그의 별명은 'Three Lung(세개의 폐)'이다.

"그는 진정한 선수들의 선수입니다." 퍼디난드의 말이다.

"그의 움직임은 세계 최고입니다. 매우 영리할 뿐만 아니라, 오프더 볼 상황에서 항상 뛰어다니죠. 그의 활동량은 믿기 힘들정도에요. 다른 어떤 선수들도 가져다줄 수 없는 새로운 면을 팀에 가져다주죠. 그는 분명 과소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는 진짜 탑 플레이어에요."

예전만한 관계를 이어가고있진 않지만, 히딩크는 아직도 박지성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한다.

"사람들은 제가 그를 유럽으로 데려왔을 때, 많이들 놀랬죠."

"그는 빅 스타들을 위해 힘든 일들을 모두 해냅니다. 전 항상 이런 선수들에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의 기술이요? 그는 절대 지치지 않습니다. 90분 내내 뛰어다닐 수 있어요. 그는 영리한 선수이며, 아주 의지가 확고한 선수죠."

그랜트 역시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열심히 뛰는 선수이며, 더 창의적인 선수들과 밸런스를 맞추어 주는 선수죠. 그는 득점이 많은 선수는 아니지만, 팀을 위해 싸워주는 선수입니다. 알렉스 경에겐 이런 선수가 필요하겠죠."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박지성의 의지를 믿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건 그의 의지에 따른거였어요."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잉글랜드 축구 경기를 보고 있다가, 제 아들이 '전 저기서 뛰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박성종씨는 프리미어 리그의 어느 클럽이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박지성은 반드시 유나이티드여야만 했다고 합니다.

"제가 벤치에 앉아야 하더라도, 전 배우고싶어요."

이 것이 바로 퍼거슨이 그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하지만 그는 어젼히 조용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올드 트래포드로 이적하며, 고국에선 무지막지한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대기업들과의 스폰서 계약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2006년 그의 자서전 역시 상당히 많이 팔렸다. 그리고 그의 공식 팬클럽은 정식(유료) 회원만 87,000명이 넘어가고 있다.

"박지성은 한국에서 최고의 스포츠 스타입니다. 아마 스포츠 외에 다른 부분까지 모두 포함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이키의 아시아-퍼시픽 마케팅 부회장 다비데 그라소가 말했다.

"크리스티아노 로날도와 웨인 루니같은 선수는 영연방에서 인기가 많지만, 한국에서 박지성의 인기는 그들을 능가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설문 조사 결과 그는 한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스타로 뽑히기도 했죠."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자란 그는 이미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지도자 생활 보다는,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내고싶어한다. 이는 분명 그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렸을 때 전 매우 어렵게 살았습니다." 금속 공장에서 일하며 지금의 박지성의 어머니와 만난 박성종씨의 말이다.

"전 배불리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린 축구 선수들을 돕고자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박지성의 회사 JS 리미티드는 경기도에 £13m짜리의 스타 플라자에 투자하며, 젊은 재능들을 키우고자 하고 있다.

박지성은 수원 공고에 재학중이었고, 신장이 너무 작아, 대학 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 U-23 대표팀에서의 준수한 활약으로, 성인팀 코치의 눈에 띄었고,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에 뽑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했고, 그 팀의 스타가 되었다.

"전 그가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걸 알고 있었어요." 당시 교토 퍼플 상가의 독일인 감독이 말했다.

"그가 아주 훌륭한 선수가 될거란걸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박지성은 2002년 교토를 일왕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해 고국에서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네, 그래요. 그는 매우 중요한 선수였죠. 그는 월드컵을 아주 훌륭하게 치뤄냈어요." 히딩크가 말했습니다.

"그는 한 골을 기록했고, 어시스트도 몇개 기록했죠. 그리고 전 그를 PSV로 데려갔습니다."

유럽으로 이적하며, 대한민국의 역대 최고의 축구 스타 차범근의 길을 따르기 시작했다. 차범근은 한국 국가대표로 121경기에 출전해 55골을 기록했으며,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추젠에서 Uefa컵을 우승한 전설적인 선수였다.

PSV에서의 시작은 좋지 않았다. 감독과의 관계부터 그러했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에선 매우 달랐어요. 저와 이영표 선수에게 대하는 태도가 말이죠."

"한국에선 할아버지 같았지만, 여기서는 보스에 가까웠습니다. 전 처음 네덜란드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좀 겁을 먹었습니다. 전혀 친숙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전 적응을 해야만 했죠."

계약한지 2달만에 박지성은 무릎 수술을 받아야했다. 이로서 PSV 팬들은 그에게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이 때가 슬럼프였다. 박지성 본인도 상당히 절망에 빠져있었다.

"전 상당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우리 경기가 고국에서 중계 되고 있는데, 전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어렸을 때 아무 걱정 없이 그냥 공을 찼을 때 였습니다."

박지성의 가족은 아시아로 돌아오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선 모든게 달랐습니다."

"지성이가 잘 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욕설을 퍼부었죠. 우리로선 상당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의 강인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단 말을 듣고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박성종씨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즌 박지성은 훌륭한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챔피언스 리그에서 자신의 가지를 입증하는 것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렇게 해냈다.

박지성은 2005년 PSV의 챔피언스 리그 4강 진출에 큰 역할을 해내며, 유럽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마크 반 봄멜과 필립 코쿠가 함께 있었던 PSV는 2차전에서 밀란을 3-1로 무찔렀고, 박지성이 선제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결국 원정골때문에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박지성은 영어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유나이티드와 사인 할 당시엔 영어가 별로 좋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영어 교육을 받았어요." 박지성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잉글랜드에 있는걸 좋아했습니다. 한국인 여학생들이 있었거든요. 전 그가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전 그에게 말했죠. '너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너무 예쁜 여자는 만나지 말렴. 니 인생을 괴롭게 할거야.' 라고 말이죠."

유나이티드로의 이적은 어쩌면 없을 수도 있었다. 박성종씨가 퍼거슨이 관심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히딩크와의 충돌이 있었다. 히딩크느 박지성이 PSV에서 3년 더 계약을 맺길 원했다. 그리고 그 계약엔 $10m 이하론 팔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히딩크는 또한 자기 자신과 PSV가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가깝다는 것도 언급하며, PSV에 남으면, 후에 첼시로 이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것이 효과가 없자, 히딩크는 자신의 의견이 박지성의 에이전트에게 잘 전해지지 않는다며 불평을 했다.

"전 맨체스터로 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를 배신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지성이 말했다.

"히딩크 감독님은 제가 남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이 결정은 매우 힘들었죠."

결국 퍼거슨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얻었다. 박지성은 £4m 가량에 이적했고, 메디컬 테스트 전에 히딩크 감독에게 감사 전화를 하며, 자신의 불편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렸다.

물론 박지성은 영국으로 향하기 전에, 불안해했다.

"어쩌면 제 생각보다 더 안좋을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전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게 된 것 만으로도 큰 성공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박지성의 유나이티드 커리어는 성공이라고 평가할만하다. 그의 첫 시즌 그는 리그 33경기에 선발로 출전했고, 4월 아스날전에서 리그 데뷔골을 기록했으며, 위건을 4-0으로 무찌르며 첫 리그 컵 메달을 따냈다.

그는 현재 퍼거슨의 구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최근 폼은 환상적입니다." 퍼거슨의 말이다.

박지성은 윔슬로에 정착했다. 파트리스 에브라에게서 산 집에 살면서 말이다.

에브라는 박지성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선수 중 하나이다. 지역 한국 식당에서 박지성과 에드윈 반 데 사르가 함께 식사하는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그리고 박성종씨는 자기 아들이 많이 변했다며 기뻐했다.

"네덜란드에서, 그는 거의 1년동안 팀 동료들에게 말을 잘 걸지 못했어요. 하지만 맨체스터에 와선 정말 잘 해고 있죠. 그는 웨인 루니나 다른 팀 동료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곤 합니다."

저녁식사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 것이란 생각은 없에버려도 괜찮다. 수원에서 온 한 선수와, 크록스테스의 악동은 이미 함께 거두어온 성공과, 앞으로 얻게 될 영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박지성의 이미 전설적인 삶에 대해서도 말이다.





기사 출처 : Guardian.co.uk 

번역:맨유한국팬카페 





출처 : 해외축구 토론방
글쓴이 : falsenin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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